야구판에서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로 김응룡 삼성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온갖 어려움과 시련이 있어도 곧잘 우승을 따내더니 22년째 감독을 연임하고 있다.
그에 못지 않은 행운의 사나이도 있다.
공교롭게도 '코끼리 감독' 그늘에서 만년 2인자 노릇을 해온 유남호 기아 감독대행이다.
유남호 감독대행은 이변이 없는 한 내년시즌 대행 꼬리표를 뗄 것으로 보인다.
전임 김성한 감독의 해임 이후 혼란에 빠진 팀을 잘 수습해 3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조용한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그의 스타일에 김익환 사장은 후한 점수를 주었고 선수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있다.
드디어 지난 82년 원년 멤버로 프로에 뛰어든 뒤 만년 2인자의 설움을 딛고 23년만에 꿈에 그리던 지휘봉을 거머쥐게 됐다.
유남호 감독대행의 갑작스러운 도약을 들춰보면 흥미롭다.
행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첫번째 행운은 지난해 기아의 플레이오프 참패에서 비롯됐다.
당시 유 감독은 백수였다.
16년동안 함께 해온 김응룡 감독과 불화끝에 삼성 유니폼을 벗었다.
다들 김응룡이라는 든든한 동앗줄이 끊긴 유 감독이 은퇴할 것으로 보았다.
유 감독은 오랫만에 가족과 추석을 보내면서 조용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가 끝난 10월 중순께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기아에서 함께 일하자는 전화였다.
당시 SK에게 충격의 3연패를 당한 김성한 감독은 재계약과 함께 서정환 코치를 1군수 석코치로 임명해 2군 감독감이 필요했다.
적임자로 유 감독이 선택받았다.
유감독은 지난 6월 서정환 수석코치와 맞교대로 1군에 올라온다.
7살이 어린 후배 김성한 감독을 보좌하는 껄끄러운 모양새였으나 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했다.
그러다 후반기들어 맥없이 5연패에 빠지자 구단은 칼을 들어 김성한 감독을 경질했다.
이 과정에서 유감독은 서정환 2군 감독과의 내부 경합 끝에 지휘봉을 잡게 된다.
두번째 행운이었다.
이후 유남호 감독대행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유감독은 한참이나 5할 승률을 밑돌면서 악전고투했다.
9월 7일까지 유감독의 성적은 겨우 12승12패였다.
4강 경쟁에서 SK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9월8일부터 찾아온 한화와의 6연전 카드였다.
한화는 주력투수들이 부상으로 마운드가 부실했고 기아타자들은 폭발적인 타력을 앞세워 5승1패를 따냈다.
기아는 한화전을 기점으로 13승 3패 1무(9월30일 현재)의 성적을 거두고 4강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유남호 감독대행은 기아의 차기감독으로 눈도장을 꾸욱 찍었다.
그렇다면 이번 가을잔치에서 유남호에게 진짜 대운(大運)이 찾아들 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