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프로야구에는 전대미문의 폭행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7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의 특급선수로 올해 올스타전 MVP까지 수상한 스타플레이어인 정수근이 부산시내에서 심야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폭력을 일으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한데 이어 10여일 후인 8월 5일에는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의 브리토가 방망이를 들고 상대팀 덕아웃을 뒤로 돌아가 습격,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희대의 사건이 생긴 것이다.
정수근과 브리토는 왜 자신들의 밥줄인 방망이를 들고 난리를 쳤을까. 일반인이 아닌 운동선수 특히 야구선수가 휘두르면 자칫 '살인미수'의 혐의까지 받을 수 있는 흉기를. 이들이 방망이를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최근 밝혀져 야구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한마디 말이 빌미가 돼 일파만파를 일으킨 것이었다.
당시 목부상 치료차 재활군에 머물고 있던 정수근은 자신의 고급 외제스포츠카를 몰고 새벽에 해운대 유흥가를 찾았다가 차때문에 시비가 붙어 폭력사건으로 연결됐다.
정수근은 나중에 가까운 지인에게 상대방쪽에서 '팀은 엉망인데 혼자 잘 놀고 있다.
몸아프다면서 좋은 차타고 잘 돌아다니네'라는 식으로 빈정거리는 바람에 싸움이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먼저 고급차를 가지고 시비를 걸면서 싸움이 시작됐고 3~4명의 젊은 남성들이 에워싼 후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으며 멱살을 잡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돼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차트렁크에 있던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정수근이나 상대방 모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정수근은 이 사건으로 프로야구 선수의 품위를 손상시킨 점에 따른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와 함께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 자동차 파손 등 한순간의 흥분으로 일으킨 폭력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처럼 프로야구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고 정수근의 선수생명까지 위협했던 이사건은 한마디의 말이 빌미가 됐던 것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외제 스포츠카는 지난 겨울 롯데와 프리 에이전트(자유계약선수) 대박계약(6년에 40억원)을 터트린 덕분에 장만한 것이었다.
정수근은 이 사건으로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처음에는 300만원의 제재금과 7경기 출장정지를 받았으나 사건의 진상이 자세히 밝혀지면서 무기장 출장정지로 징계가 확대된 뒤 20게임에 결장하고 난 8월 27일 징계가 해제됐다.
브리토 사건은 그가 한국말을 너무 잘한 탓에 생긴 일이었다.
당시 사건의 발단은 7회 삼성 공격 때 SK의 바뀐 투수 김희걸이 첫 타자인 삼성 간판 양준혁을 오른 무릎쪽 몸에 맞는 볼로 맞히면서 잉태됐다.
돌아선 7회 말 구원 호지스가 브리토와의 승부에서 낮은 볼 세 개를 연거푸 던지다 마지막 4구째를 브리토의 등 뒤로 가는 볼을 던지면서 빈볼이 아니냐는 억측을 낳게 했고 7회가 끝난 후 8회초 삼성 공격때 브리토가 삼성 덕아웃 뒤쪽으로 방망이를 들고 쳐들어가 호지스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집단 난투극으로 번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는 후문이다.
주포인 양준혁이 데드볼을 맞자 삼성 벤치에서는 곧바로 상대편 주포인 브리토에게 보복하라는 주문이 내려졌다.
삼성 벤치는 브리토가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것으로 여겼는지 브리토 타석 때 '때려라'는 말을 날렸고 호지스가 충실하게 작전(?)을 수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로 5년째 한국프로야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브리토는 동료들과 간단한 대화는 물론 상대편 덕아웃에서 웬만한 한국말로 떠드는 야구용어는 다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브리토는 삼성 벤치에서 자신을 맞히라는 말이 흘러나온 뒤 데드볼을 맞자 화가 났고 다음 이닝에 삼성 덕아웃을 습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삼성에 2002년부터 2년간 몸담았던 브리토로선 참을 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어린시절부터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함께 야구를 해온 친구사이인 팀동료 카브레라와 함께 일을 저지렀다.
브리토는 자신을 맞춘 장본인인 상대투수 호지스와 맞붙었고 카브레라는 삼성 벤치의 대장인 김응룡 감독과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다.
브리토에 대한 500만원의 제재금과 20경기 출장정지 등으로 일단락된 이 사건은 한국프로야구사에 진기록(?)도 남겼다.
투수의 투구에 불만을 품은 타자가 덕아웃 뒤로 돌아가 방망이를 들고 몸싸움을 벌인 것이나 한국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들끼리 정면충돌한 것이나 모두 처음 나온 장면이었다.
또 하나 덧붙이면 최고령인 삼성 김응룡 감독(63)과 선수(SK 카브레라)가 몸싸움을 벌인 것도 좀체로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수근이나 브리토 사건 모두 상대의 한마디 말에 격분, 방망이를 휘두르는 불상사로 연결된 것으로 '자나깨나 입조심하고 밥줄이지만 무기가 될 수 있는 도구를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한다' 점을 명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