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만에 한 시즌 최다안타의 대기록을 수립한 이치로 스즈키는 부단한 훈련과 자기 개발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세계 야구계를 평정한 진정한 의미의 ‘야구 천재’다.
일본야구의 간판스타인 마쓰이 히데키, 기요하라 가즈히로 등이 고시엔 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과 달리, 이치로는 무명에서 슈퍼스타로 떠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나고야 태생인 이치로는 고교시절만 해도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나고야전기고교에서 팀의 에이스 겸 4번타자로 활동했지만 소속팀의 전력이 약했던 탓에 고시엔 대회에서도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교를 졸업한 후 퍼시픽리그 드래프트 4순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에 지명된 이치로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다.
빨랫줄 같은 이치로의 송구 능력은 고교시절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것에 기인한 것이다.
프로야구 첫해인 1992년을 2군에서 머문 이치로는 1993년 1군에 데뷔하지만 1군과 2군을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했고 1군 경기 42경기에서 타율 1할8푼8리에 그치며 여전히 그저 그런 선수라는 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치로의 재능이 만개한 것은 1994년 오릭스 감독에 취임한 오기 감독의 눈에 띄면서부터다.
속칭 ‘진자 타법’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타격폼을 가진 이치로를 눈여겨 본 오기 감독은 시즌 개막전부터 이치로를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했고 이치로는 130경기에 출장, 13홈런 3할8푼5리에 일본 프로야구 신기록인 210개의 안타를 때려내는 맹활약으로 일본 야구에 이치로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치로는 1994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연속 리그 타율 1위, 골드 글러브 수상, 올스타 선정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일본 프로야구 마지막 시즌에는 3할8푼7리로 자신이 1994년 세운 리그 최고 타율을 경신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다.
2000년 11월 이적료 1312만 달러의 조건으로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 메이저리그 입성의 꿈을 이룬 이치로는 ‘파워가 부족해서 메이저리그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비웃듯이 데뷔 첫해부터 맹활약을 펼친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첫해 242개의 안타 타율 3할5푼 56도루 8홈런으로 리그 신인왕과 MVP를 석권하며 미국에 이치로 선풍을 일으켰고 이치로의 맹활약은 ‘동양인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 안 통한다’는 기존 관념을 깨뜨려 이후 일본인 야수들의 메이저리그행이 봇물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2002년 208안타 3할2푼1리, 2003년 212안타 3할1푼2리의 기복 없는 활약으로 ‘약점이 분석돼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비관적인 평가를 불식시키며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내티 레즈),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에 이어 시애틀의 간판스타로 군림했다.
이치로 스즈키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선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타격 이상으로 훌륭한 그의 수비 솜씨 때문이다.
고교 시절 팀의 에이스로 활약할 정도로 강한 어깨를 지닌 이치로는 데뷔 첫해 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데 이어 2002년 11개 2003년 1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폭넓은 수비 범위와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3년 연속 리그 골드 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됐다.
일본에서의 수상을 포함하면 10년째 최고 수비수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