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전 두산 베어스 감독(58)이 4일 한화 이글스 새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재야에 있는 동안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간헐적으로 지도자 복귀의 희망을 털어놓았던 그는 희망대로 야인생활을 1년 만에 청산, 아마도 마지막 될 지도 모를 승부세계에 다시 발을 디뎠다.
김 감독은 물러 갈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지도자다.
9년 동안 2차례나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공적에도 불구 2003 시즌 후 두산 구단이 선동렬(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을 감독으로 영입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제자나 다름없는 후배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미련을 털고 팀을 떠났다.
당시 김 감독의 '용퇴'를 놓고 주변에선 명분을 중시하는 그의 결단을 높이 샀다.
한화 구단측이 새 감독 선임 발표를 한 4일 아침 김 감독은 감회가 새로운 지 두산 구단을 물러나게 된 경위를 털어놓았다.
2003년 9월29일 한화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경창호 두산 사장이 고문직을 제의했으나 김 감독은 손길을 뿌리쳤다.
김 감독은 "그 때 내 심정은 과연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되느냐. 선동렬이 오면 코치 6명이 날아가는데 정신이 버쩍 들더라구. 그래서 경 사장의 제의를 사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두산 구단은 2003년 시즌 도중인 5월 말께 이미 김 감독에게 선동렬의 영입 움직임을 알리고 부사장직을 제의했었다.
그러다가 시즌이 끝나자마자 두산 구단이 선동렬과 본격적으로 접촉하자 김 감독은 "자존심 30%, 선동렬에 대한 길 열어주기 30%, 데리고 있던 코치들의 진로에 대한 걱정 30% 때문에" 용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동렬이 두산과의 조건이 맞지않아 기수를 삼성쪽으로 급선회,김 감독의 이런 미덕도 허공에 떠버렸다.
김 감독은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딱한 처지에 놓인 선후배들을 챙기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흔히 그를 '덕(德)'을 앞세우는 지도자로 수식한다.
노래 솜씨가 웬만한 가수 뺨치는 김 감독은 술자리에서 취흥이 도도하면 원로가수 남일해의 를 구성지게 부르곤 한다.
"...세상살이 바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거라서/ 잊고 살았네 모르고 살았네/ 앞만 보고 살았네 친구여 내 친구야/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지금처럼 힘들 때도 있지/ 여보게 친구야 다시 만날 땐 너털 웃음 한 번 웃어보세..."김 감독은 국가 대표팀 지휘봉을 쥐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을 일궈냈다.
그 이전 1995년 제 2회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 때도 감독으로 팀을 이끌어 2승2무2패를 기록, 한국야구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절제와 포용력의 미학을 여실히 보여준 그의 선수단 융화노력이 바탕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장기간 지도자 생활로 성한 이가 거의 없을 지경인 김 감독이 한화에서 띄울 승부수를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