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구 두산전에서 양준혁의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이긴(4-3) 후 흐뭇한 표정을 지었던 김응룡 삼성감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색이 변했다.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현대가 수원에서 브룸바의 9회말 끝내기 적시타를 앞세워 기아에 4-3으로 역전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현대가 졌다면 삼성이 공동선두로 올라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확률이 높았다.
먼저 경기를 끝낸 김응룡 감독이 현대의 경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당연한 일. 시시각각 전해오는 경기상황을 체크하던 김응룡 감독은 현대가 극적인 역전드라마를 연출하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유인즉 이랬다.
2-3으로 뒤진 현대의 9회말 공격에서 기아의 투수로테이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는 9회말 1사 만루의 역전기회를 잡았다.
다음 타석에 들어설 타자는 좌타자 전준호. 김재박 감독은 기아 투수가 좌완 오철민인 점을 고려, 우타자 김일경을 대타로 내세웠다.
김일경은 그러나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음 타자는 브룸바. 우타자인 브룸바는 오철민으로부터 역전 적시타를 뺏어냈다.
이같은 사실을 안 김응룡 감독은 기아벤치가 우타자 브룸바타석 때 오철민 대신 신용운이나 이강철을 내세우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기아가 삼성의 한국시리즈 직행을 마뜩치 않게 여겨 현대에 의도적으로 져준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의 이같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석이 없지 않다.
오철민을 강판시키려면 김일경의 타석 때 이미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굳이 브룸바 타석 때 바꾸지 않은 것을 이유로 기아를 비난하는 것은 다른 흑심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을 낳고 있다.
산전수전 다겪은 김응룡 감독은 심리전의 대가다.
그는 큰 경기를 앞두거나 큰 경기 때마다 독특한 방식(신경전)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한국시리즈. 당시 해태를 이끌던 김응룡 감독은 10월20일 인천에서 열린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포스트시즌 사상 첫 노히트노런의 수모를 당했다.
당시 현대는 투수는 정명원. 시리즈전적이 2승2패로 호각을 이룬데다가 노히트노런까지 당해 팀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 대목에서 김응룡 감독은 불쑥 심판 편파배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인천 출신 심판들이 의도적으로 현대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김응룡 감독의 한마디는 매스컴에 그대로 퍼져 급기야 한국시리즈의 흐름을 바꿨고 결국 해태는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93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때도 1승1무2패로 뒤지고 있던 김응룡 감독이 심판에게 과도하게 어필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 적이 있다.
기아의 투수로테이션을 문제삼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김응룡 감독의 이전 행태로 볼 때 한국시리즈 직행팀을 가르는 5일 최종전을 앞둔 상대팀 압박용일 가능성이 높다.
또 포스트시즌에서 기아와 플레이오프를 벌일 경우에 기아를 흔들려는 고도의 심리전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김응룡 감독의 분노가 '흑심인지 본심인지'는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