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밤비노의 저주’란 말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가 보스턴이 과연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밤비노의 저주’란 1918년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이 없는 보스턴의 징크스가 1919년 겨울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하면서 받은 ‘저주’때문이라는 데서 생긴 말이다.
스포츠전문 사이트 ESPN은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 개막을 맞아 밤비노의 저주에 대한 진실 밝히기에 나섰다. 현재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ESPN에 의하면 진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크게 틀리다.
▲밤비노의 저주는 최근에 생긴 말이다.
베이브 루스가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것이 1919년이니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꽤 오래 전부터 통용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밤비노의 저주’는 실은 의 헤드라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 스포츠기자 조지 벡시가 보스턴이 우승 한발짝 앞에서 어이 없이 역전패한 1986년 월드시리즈와 관련된 기사를 쓰며 ‘베이브 루스의 저주가 재현됐다.(Babe Ruth Curse Strikes Again)’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인 것.
5-3으로 앞선 6차전 10회말 2사 후 밥 스탠리의 폭투와 빌 버크너의 끝내기 실책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7차전에서도 5-8로 역전패한 레드삭스가 귀신에 홀린 듯이 어이없이 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쓰며 베이브 루스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밤비노의 저주(Curse of the Bambino)’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라는 제목의 보스턴 레드삭스 서적이 출간되면서부터다.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시킨 해리 프레이지라는 '악당'은 1918년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보스턴 팬들의 한풀이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이후 베이브 루스와 해리 프레이지에 대한 각종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고 수십 종류의 관련 서적이 출간됐으며 ‘밤비노의 저주’라는 징크스는 언론과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밤비노의 저주를 철썩같이 믿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팬들이 2002년 베이브 루스가 뉴욕으로 가면서 버리고 갔다는 피아노 인양 작업을 위해 연못에 뛰어드는 등 웃지 못할 일들을 벌인 것은 1990년 출간된 ‘밤비노의 저주’라는 책에서 기인했다. 무려 86년간이나 내려오고 있다는 ‘밤비노의 저주’는 사실 탄생한 지 14년에 불과한 것이다.
▲해리 프레이지와 관련된 역사 왜곡
빚을 갚기 위해 베이브 루스를 10만 달러라는 헐값에 뉴욕 양키스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해리 프레이지는 ‘저주’를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무능력한 구단주였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프레이지는 당시 가장 능력있는 구단주 중 한명이었으며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였다. 프레이지는 1916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해 1923년 매각할 때까지 단 한번도 자금에 쪼들리지 않았다.
프레이지가 악당으로 손꼽힌 것은 미국 사회의 유태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 출마를 위해 창간한 는 유태인들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유태인을 비방하는 시리즈물을 연재했다. 에서 야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유태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해리 프레이지다.
그러나 사실 프레이지는 유태인이 아니다. 장로교 신자인 그는 아일랜드계 이민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프레이지를 유태인으로 만든 것은 당시 프레이지가 레드삭스를 인수한 1916년 당시 아메리칸리그 회장이었던 밴 존슨이다.
존슨은 자신의 독단적인 리그 운영에 반기를 든 프레이지를 탐욕스러운 유태인으로 음해했고 야구계에서 ‘왕따’를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밤비노의 저주’와 관련한 역사 왜곡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1947년 유명한 야구저널리스트인 프레드 리브스가 저술한 라는 책이다. 보스턴 구단 역사의 교과서로 불린 이 책에는 '파산한 프레이지가 빚에 쪼들려 현금 10만 달러에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넘겼다'고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프레이지는 왜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로 보냈을까
베이브 루스의 트레이드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1918년 투수로서 월드시리즈 정상을 밟은 베이브 루스는 다음 시즌부터 타자로 전향을 원했다. 29홈런을 날리며 시즌을 마치기는 했지만 시즌 초반 극심한 타격부진을 보였고, 구단 규율을 어기고 감독에게 항명하는 등 팀 내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선수였다. 전해 챔피언이었던 보스턴은 이해 6위로 추락하는 부진을 보였고 베이브 루스의 행태에 불만을 느낀 프레이지는 최고대우의 계약을 요구하는 그를 양키스로 트레이드 했다.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로 트레이드시켰던 것은 밴 존슨과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당시 아메리칸 리그 구단은 존슨파와 비존슨파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존슨파의 구단들은 프레이지를 야구판에서 쫓아내기 위해 보스턴 레드삭스와 선수 트레이드 등 일체의 거래를 하려고 들지 않았다. 오직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 삭스만이 보스턴과 거래를 했고, 프레이지는 당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양키스와 일종의 ‘윈-윈’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이다.
프레이지가 ‘밤비노의 저주’의 희생양이 된 이유가 있다면 운이 없는 것 뿐이다. 그 당시 누구도 프레이지의 트레이드를 멍청한 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1920년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베이브 루스는 54개의 홈런을, 다음해에는 59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1923년 리그 MVP로 뽑히며 양키스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양키스로 간 베이브 루스가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보이리라고는 아무도, 심지어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스턴 역사상 실제로 멍청한 트레이드를 단행한 사람은 1996년 로저 클레멘스를 토론토로 보낸 댄 듀켓 단장이다. 클레멘스는 결국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보스턴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지만 아무도 '로켓맨의 저주' 운운하지는 않았다.
듀켓 단장은 클레멘스를 잃은 것 외에도 여러가지로 팀을 망쳐놨지만 아무도 듀켓 단장에게 프레이지 만큼의 비난을 보내지는 않는다.
프레이지가 단행한 베이브 루스 트레이드는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정상적인 구단간의 거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