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전은 확실한 투수 두 명만 있으면 절대유리하다.' 전문가라면 너나할 것 없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한번쯤 읊는 말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맞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또다른 함의가 담겨있다. '선발투수의 성적은 포수하기 나름이다.' 그만큼 안방마님의 구실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음은 단기전에서 포수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사례 두 가지. 1990년 LG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LG감독은 백인천. 백 감독은 시리즈 도중 황당한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투수였던 정삼흠에게 삼성 포수 이만수가 계속 경기에 출장할 수 있도록 좋은 볼을 던져주라는 것. 상식적으로는 언뜻 납득이 안가는 백 감독의 지시사항이었으나 눈치빠른 정삼흠은 결국 이만수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기 쉬운 공을 던져 홈런을 일부러 만들어 준 것이다.
백 감독은 투수리드 능력이 떨어지는 이만수가 계속 경기에 나와야 게임을 수월하게 풀어갈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만수로선 모욕적인 일이었겠으나) 타격감이 좋다고 여긴 삼성은 이만수에게 계속 포수자리를 맡겼다. 결국 LG는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었지만 백 감독의 '성동격서' 작전이 시리즈 승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2000년 한국시리즈 때의 일도 야구인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는 얘기 가운데 하나이다. 현대와 두산이 격돌한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의 포수는 박경완이었다. 그 해 시리즈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던 현대의 중간계투 조웅천은 "볼이 너무 좋다. 두산타자들이 치기 힘들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제가 한 거는 별로 없어요. 경완이 형이 다 한 거지." 그리고 현대는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너나 할 것없이 박경완을 한국시리즈제패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했다.
단기전은 결국 투수놀음이지만 보이지 않는 포수들의 두뇌 싸움이 팀성적을 가름할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올 준플레이오프에서 격돌하는 두산과 기아의 안방마님은 27세 동갑내기인 홍성흔과 김상훈이다. 김상훈이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인 반면 홍성흔은 공격형이다. 톡톡 튀는 성격만큼 홍성흔은 수비리드도 공격적이다. 볼카운트가 유리하면 정면승부로 타자를 상대하도록 투수들에게 사인을 낸다.
포수출신 김경문 감독도 홍성흔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항상 홍성흔이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투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신한다.
김상훈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안정감이 있다. 투수리드도 똑같다. 무리하기보다는 정석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도루 저지나 블로킹 능력도 뛰어나다. 때때로 대담하게 상대타자의 허점을 찔러 꼼짝 못하게는 하는 일도 종종 있다.
'소리가 나지 않지만 강한' 김상훈, '소리도 요란하고 화려한' 홍성흔의 인사이드웍이 1차전 선발로 나설 리오스(기아)와 레스(두산)의 진검승부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