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한다.
독자들의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있지만 그래도 제갈공명만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인물도 드물다.
뛰어난 전력가이자 지략가인 그도 전쟁터에서는 정공법대신 속임수로 상대방을 물리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사마중달과의 서성싸움이다.
사마중달에게 져 퇴로를 차단당한 제갈공명은 서성으로 잠시 피한다.
남은 군사가 5,000명에 불과, 제갈공명이 15만 대군의 사마중달에게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정작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제갈공명은 한가하기 그지 없었다.
사마중달 군대의 공격을 목전에 둔 제갈공명은 성문을 크게 열어둔 채 두 아이와 함께 누각에서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마중달은 필시 제갈공명이 자신을 유인하는 것으로 보고 군대를 물렸다.
결국 제갈공명은 전략 전술이 아닌 사기로 사마중달을 물리친 것이다.
야구에서도 이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상대방의 심중을 헷갈리게 만들어 분위기를 반전시키거나 승기를 잡는 속임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야구는 '상대방 속이기 게임'이라는 곱지 않은 말을 듣기도 한다.
2000년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은 현대 선수들이 2루에 나가면 포수의 사인을 훔친 후 타자에게 알려준다며 '사인 훔쳐보기'의혹을 제기했다.
2루에 나가있던 박재홍이 두산 배터리 사인을 훔쳐보고 타자에게 구질과 코스를 알려주었다는 게 두산의 항의 내용이었다.
겉으로는 큰 탈없이 무마됐지만 이후 사인 훔치기 시비로 인한 여파는 적지 않았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두산쪽의 사인 훔치기 의혹 제기로 인해 현대는 내부적으로 꽤 흔들렸다.
3연승후 3연패를 당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결국 3승 4패로 현대에 패한 김인식 당시 두산 감독은 시리즈가 끝난 며칠 후 "야구란 게 그런 묘미도 있는 것 아니냐"며 전략적인 차원의 시비걸기였다는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1996년 현대와 해태의 한국시리즈 4차전. 김응룡 감독이 이끌던 해태는 현대 정명원에게 포스트시즌 사상 첫 노히트노런의 수모를 당했다.
경기가 끝나자 마자 김응룡 감독은 "인천출신 심판들이 인천 연고팀 현대를 봐주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수세에 몰린 김감독이 심판진을 흔들어 현대의 상승세를 꺾겠다는 의도성이 엿보였다.
현대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 반발했지만 파급효과는 컸다.
김감독의 고도의 외곽 때리기 전술이 그대로 맞아 떨어져 현대는 4차전 이후 해태에게 완패,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올 플레이오프도 이런 심리전이 통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응룡 삼성감독은 벌써부터 1차전 선발로 나서는 레스의 스핏볼(공에 침을 묻혀 투구하는 부정행위)에 대해 시비를 걸고 나섰다.
기아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기아측이 이미 한번 써먹은 수법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목적 포석으로 레스의 스핏볼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고 나섰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두산측에 공식적으로 레스의 제재를 요청하겠다는 것이다.
두산측은 일고의 대응가치도 없다고 치부하고 있다.
뻔한 얘기라는 것이다.
김응룡 감독의 두산 흔들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응룡 감독의 심모원려 전술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본 게임에 들어가면 김응룡감독의 심리전과 김경문 감독의 응전이 불꽃을 튀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