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프로야구 출범준비가 한창이던 1981년. 대구 연고팀을 창단하기로 한 삼성 그룹은 "프로야구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대기업이 아니라 조무래기들이어서 야구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분히 재계 1, 2위를 다투던 현대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현대 왕회장(고 정주영)은 당시 88올림픽 유치로 동분서주하던 터여서 인천 연고팀 창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프로야구에 눈길한 번 주지 않던 현대는 93년 프로야구팀 창단을 전제를 아마야구팀을 창단을 서두르게 된다.
기존구단들이 "현대가 프로야구에 참여하면 판이 깨진다"는 이유로 현대를 배척하자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현대는 이듬해 아마야구의 대어들을 싹쓸이, 현대 피닉스라는 아마야구 실업팀을 창단해 프로야구 입성 준비를 마쳤다.
결국 현대는 95년 태평양을 인수, 삼성 등 라이벌 그룹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표를 성취, 역시 현대답다는 말을 들었다.
현대와 삼성의 악연은 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는 대표팀 2루수 김재걸과 계약을 다 마친상태였다.
하지만 삼성은 비밀계약으로 김재걸을 빼돌려 현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사상 초유의 프로와 아마팀간의 스카우트 싸움은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때부터 두 구단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95년 태평양을 인수, 전격적으로 프로야구에 뛰어든 현대는 96년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스카우트 잡음과 돈을 물쓰듯 쏟아부은 현대 때문에 다른 구단들은 골머리를 싸매야 할 지경이었다.
김재박이라는 스타출신 감독을 사령탑으로 임명한 현대는 승승장구하며 프로야구 출범 이후 통한우승을 차지한 83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했던 삼성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던 두 팀은 시즌 중에 빈볼을 주고받는 응전으로 서로에게 보복을 가했다.
사건의 발단은 96년 5월14일에 일어났다.
이전부터 삼성투수들이 현대타자들에게 심심치 않게 빈볼을 던지는데 분기탱천한 현대 정명원이 삼성의 간판타자 양준혁과 이승엽에게 빈볼을 던져 양팀이 뒤엉켜 난장판을 만들어 버렸다.
당시 두 팀 모두 의도성 있는 빈볼로 상대팀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게 두팀 관계자들의 후일담이다.
실제 정명원은 빈볼시비를 일으킨 후 당시 대구에 근무중이던 현대계열사 임원으로부터 금일봉까지 받았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한 달 후 두 팀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봉합이 됐지만 이미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현대의 불도저식 스카우트전쟁은 삼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돈이라면 현대보다 못할 게 없었던 삼성이었다.
하지만 김용휘 단장(현 현대 유니콘스 사장)이라는 뛰어난 수완가를 보유한 현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곤 했다.
현대는 97시즌이 끝난 후 프로야구판을 뒤흔드는 대형 트레이드 사실을 공표했다.
당시 최고의 포수로 꼽혔던 쌍방울의 박경완을 무려 현금 9억원에 트레이드해 온 것이다.
야구팬은 물론 타구단 관계자들도 현대의 '큰 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역대 최고의 트레이드 머니였기 때문이었다.
98년 현대는 박경완을 앞세워 프로야구 입성 3년만에 한국시리즈를 제패한다.
삼성은 더 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속으로는 구겨진 자존심을 ??꼭 눌러야 했다.
돈으로 할 수 있다면 모든 걸 할수 있다는 삼성. 현대의 영광을 그대로 두고볼 리 만무했다.
98시즌이 끝나자 마자 삼성은 대반격에 나섰다.
팀의 간판 타자 양준혁을 해태에 내주는 대신 마무리 임창용을 데려온 것은 빅딜의 시작에 불과했다.
삼성은 12월 24일 쌍방울 김기태와 김현욱을 현금 20억 원에 사들이는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현대와 삼성의 돈싸움이 본격화했다는 신호탄이었다.
선수들의 연봉이 천정부지 치솟기 시작했다.
현대가 먼저 불을 질렀지만 삼성이 가세하면서 억대연봉 선수들이 속출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99시즌 삼성은 이승엽이 프로야구 최초로 시즌 50홈런을 돌파하자 최고대우를 공언했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현대는 선발 20승 정민태에게 역시 최고대우를 해주겠다고 맞불을 질렀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이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삼성 사장이던 전수신 씨는 몇몇 기자들에게 "삼성이 돈싸움 한다는 얘기를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며 양보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결국 삼성은 이승엽에게 3억 원을 제시, 사인을 했고 며칠이 지난 후 현대는 3억1,000만원에 정민태와 계약을 마쳤다.
이제는 현대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 삼성에 절대적으로 밀리는 형편이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두 대기업의 자존심 싸움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