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30일은 현대 에이스 정민태(34)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야구 인생 20년만에 그가 처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 날 LG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8회에 구원 등판, 세이브를 올린 정민태는 그해 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을 창단 후 첫 정상에 올려놨다. 생애 첫 한국시리즈 MVP도 그의 몫이었으니 눈물을 펑펑 쏟을 만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정민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이날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20년간 야구선수로 뛰면서 처음 울었다”며 감격해 했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아마시절 한양대 1년후배인 구대성(일본 오릭스)과 함께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며 ‘좌대성 우민태’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92년 연고팀인 태평양에 1차지명으로 입단한다. 당시 최대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큰 기대를 모았으나 병역 비리에 연루돼 영어의 신세가 된다. 다시 팀에 합류했지만 이번에는 팔꿈치에 이상이 생겼다.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병원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는 2년간의 피나는 재활훈련 끝에 94년 5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한다.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해 팀을 창단한 96년 15승을 거두며 뒤늦게 빛을 본 그는 이후 승승장구, 98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으니 눈물이 쏟아질만도 했다.
그리고 99년 시즌이 끝난후 그는 또 한번 눈물을 보인다. 구단의 일본 진출 약속이 불발에 그쳤기 때문. 집안을 혼자 책임져야 했던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가고 싶었던 게 솔직한 그의 마음이었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일본 진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좌절돼 다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듬해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1승을 올리며 팀을 한국시리즈 2번째 우승으로 이끈 후 2001년 일본 프로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소원을 성취했다. 투수코치와의 불화 등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을 펼친 그는 2003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현대에 복귀했다.
그리고 같은 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3승을 따내는 투혼으로 팀을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견인하며 통산 2번째 MVP까지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에서 통산 11경기에 등판, 6승1패에 방어율 1.85를 기록, '가을 사나이'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던 98년 28세의 팔팔하던 청년 정민태는 이제 어느덧 나이가 34세나 됐다. 22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한 정민태는 세월의 무게를 절감하며 코칭스태프의 기대를 저버렸다.
1 1/3이닝 동안 5안타를 맞으며 무려 6실점하고 강판하는 수모를 당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마운드에서 걸어내려오는 동안 정민태의 머릿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다음 기회를 기약했지만 그는 속으로 한없이 울었다. 이번에는 슬픔에 복받친 눈물도 행복에 겨운 눈물도 아니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저미어 오는 회한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