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풀어 본 김응룡, 김재박 감독의 지략 싸움
OSEN 수원=정연석 기자& 기자
발행 2004.10.22 10: 09

전쟁의 상책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은 하수들이 즐겨쓰는 하책(下策)중의 하책이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도 그전에 기선을 제압할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중 하나가 말로 상대의 심기를 건드려 노여워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한국시리즈의 최대의 화두는 한때 재계 라이벌이었던 삼성과 현대의 자존심 싸움에서 누가 이기냐는 것이다. 그에 못지 않게 김재박(50) 현대감독과 김응룡(63) 삼성감독이 '지존'자리를 놓고 벌이는 지략대결도 관심사다.
21일 1차전은 '양 김'이 상대의 힘을 시험하는 장이었다. 결과는 현대 김재박 감독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승부가 거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작 본게임은 1차전이 끝난 후부터 시작됐다.'말싸움'이 본게임의 핵심이다.
말로써 상대를 능히 제압할수 있다면 이미 승부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
먼저 펀치를 날린 것은 김응룡 감독이었다. "결정적인 패인은 번트 실패였다. 상대는 100% 성공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단지 그 차이였을 뿐이다."
당연한 말이고 정확한 패인분석이다.
그러나 한꺼풀 뒤집어보면 김 감독이 비수를 감추고 있다는 것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단지 그 차이였을 뿐이다"라는 말은 곧 현대도 별 것 아니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1차전 경기 내용을 놓고 보면 힘에서 삼성이 현대에 밀린 것이 분명한데도 이를 철저하게 감추고 현대와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리번트 작전은 큰 경기에서 자주썼던 것이다"는 것은 또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1차전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김재걸에게 스리번트 작전 사인을 낸 것에 대한 해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
마치 감독이 작전을 잘못 펴 패한 것처럼 오해할수 있는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여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용병술의 달인 김재박 감독과의 벤치 싸움에서 졌다는 말을 듣기 싫다는 뜻이다.
김응룡 감독은 한술 더떠 "오늘 졌지만 내일 이기면 똑같다"며 1차전 패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겠지만 일곱 판 중에 이제 한 판 진 걸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다.
절대 쉽게 밀리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있다.
그런 김응룡 감독의 말의 유희에 넘어갈 김재박 감독이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 김재박 감독이 언급한 내용 중 가장 새겨들어할 대목이 하나 있다.
인터뷰 말미에 "3차전 선발까지 예고한다면 김수경이다"고 말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3일 뒤에 열린 3차전 선발까지 누설하다니. 전쟁터에 나선 장수가 일급비밀을 발설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꾀많은 '여우'가 그냥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3차전 선발까지 통보해줬는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코끼리
감독쯤이야 하는 여유까지 배어있다.
"3루수 브룸바 흔들기는 예상한 것이다. 기본기가 튼실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또 무슨 말인가.
김응룡 감독이 1, 2회에 기습번트로 브룸바를 흔들려고 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은 그같은 얕은 수는 이미 읽고 대비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는 뜻이다. 김응룡식 야구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비아냥에 버금가는 말투다.
이제 더 이상 쓸 데 없는 짓 하지말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뤄보자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양 김'은 이제 겨우 일합밖에 겨루지 않았는데 가시돋친 말펀치를 주고받으며 상대방 깔아뭉개기에 나선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KS에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승세를 탈 상책이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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