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했던가.
테리 프랑코나(45)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이 86년 동안 아무도 해내지 못한 대업을 성취하며 마침내 활짝 웃었다.
프랑코나 감독은 시즌 내내 언론과 팬으로부터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경기 내내 덕아웃에서 입안이 터질 듯 껌을 씹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 양키스와의 라이벌전에서는 뉴욕 언론들로부터 ‘엉망진창’이라는 비웃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 되는 ‘명장’ 조 토리 양키스 감독과 토니 라루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을 차례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그는 현역 시절에나 감독 시절에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늘 변방에 머물렀다.
81년부터 90년까지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밀워키 브루어스 등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나 708경기 통산 타율 2할7푼4리의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은퇴, 지도자 생활에 들어갔다.
97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에 전격 취임했지만 첫 해에 68승 94패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하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 4년의 임기 동안 지구 꼴찌 2번에 5할 승률을 단 한 번도 넘지 못하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팀을 떠났다.
거칠기로 유명한 필리스 팬들은 거듭되는 부진에도 불구, 프랑코나 감독이 해임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어서 떠나나며 그의 차 타이어에 구멍을 뚫는 등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프랑코나 감독 마지막 임기 당시 필라델피아가 기록한 65승 97패는 90년 이후 팀 최저 승률 2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벤치 코치로 있던 프랑코나는 보스턴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숙적 양키스에 일격을 당한 뒤 신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사람 좋기로 유명하다는 그는 특유의 ‘느슨한(?)’ 관리로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했고 그라운드에서 기량을 십분 발휘하도록 유도했다. 마치 할로원 데이의 가장 행렬을 보는 듯 한 보스턴 선수들의 자유분방하고 톡톡 튀는 외모는 프랑코나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물러 보이는 듯한 프랑코나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선수들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으로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을 일궈냈다.
대표적인 것이 마크 벨혼의 사례. 프랑코나 감독은 챔피언십시리즈 중반까지 극도의 타격 부진을 보인 마크 벨혼을 끝까지 믿고 꾸준히 주전으로 기용했고 벨혼은 결국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과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터드리는 등 고비마다 한방을 터트려 주며 보스턴의 우승에 큰 몫을 해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선발로 데릭 로를 올린 것도 프랑코나 감독의 순발력을 증명하는 사례. 당초 팀 웨이크필드가 내정되어 있었지만 프랑코나 감독은 마지막 순간 데릭 로로 선발투수를 바꿨고 로는 6이닝 1실점의 완벽투로 양키스 타선을 제압했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처음인 프랑코나 감독은 디비전시리즈부터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감독 3명을 차례로 꺾는 진기록도 남기게 됐다. 디비전시리즈에서는 2002년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우승으로 이끈 마이크 소시아 감독을 상대로 3-0으로 싱거운 승리를 거뒀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는 월드시리즈 우승 4회에 빛나는 조 토리 감독을 상대로 대역전극을 벌인 데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는 89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우승시킨 백전노장 토니 라루사 감독을 KO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