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가 3번이나 나오고 9차전까지 가는 마라톤 승부 끝에 막을 내린 2004 한국시리즈에서는 유독 양 팀 감독과 선수들의 설전이 치열했다.
‘입씨름 시리즈’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나왔던 문제의 발언들을 정리했다.
▲져주기 의혹 제기
김응룡 삼성 감독과 김재박 현대 감독의 신경전과 입씨름은 한국시리즈가 개막하기도 전부터 시작됐다. 김응룡 감독은 정규시즌 막판 기아가 현대와의 경기에서 일부러 지면서 정규리그 우승을 도와줬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현대 벤치 흔들기에 나섰다. 그러자 김재박 감독은 “아직도 그런 식으로 야구를 하느냐”고 맞받아쳤다.
▲선발투수 알려드릴까요?
김재박 감독은 1차전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 도중 질문하지도 않은 3차전 선발투수를 언급했다. 김응룡 감독이 3차전 선발투수까지 밝힌 것이 현대 코칭 스태프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라는 판단에서 언론을 상대로 역공을 펼친 것.
▲번트 논쟁
김응룡 감독은 3차전이 끝난 뒤 “내 20년 현역 생활 동안 한 번도 안해 봐서 모르겠는데 번트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는 말을 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번트 작전을 걸 때마다 번번이 실패한 것을 한탄하는 듯한 말이지만 ‘번트의 귀재’ 현대 김재박 감독에 대한 은근한 비아냥이었다.
김재박 감독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김재박 감독은 “메이저리그를 보라. 그들도 기회가 되면 번번이 갖다 대지 않느냐”라고 응수하며 삼성의 번트 실패를 비웃었다.
▲연막탄과 방독면
허벅지 부상을 당한 박종호의 한국시리즈 출전여부를 놓고서도 양 감독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김응룡 감독이 박종호의 허벅지 부상이 심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김재박 감독은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봐야 안다. 연막작전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김응룡 감독은 김재박 감독의 ‘연막작전론’에 대해 ‘연막작전을 펴려면 방독면을 준비해야겠다’고 재치있게 응수해 화제가 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말이지
현대의 용병 투수 마이크 피어리와 삼성 간판타자 양준혁은 때 아닌 ‘매너’를 문제 삼아 서로 공격적인 발언을 주고 받았다. 피어리는 양준혁에 대해 “한국 타자들 중 최악의 매너를 가지고 있다. 특히 볼넷을 얻고 나갈 때 방망이를 집어 던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메이저리그라면 빈볼을 맞을 수도 있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양준혁도 질세라 “감독도 아닌 자가 다른 팀 타자 버릇까지 문제 삼으려 드느냐”며 “메이저리그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선수가 왜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느냐고”고 쏘아붙였다.
▲무승부와 선진야구
김응룡 감독은 4차전에서 선발 배영수의 눈부신 호투에도 불구, 연장 제한에 걸려 0-0으로 승부를 내지 못하자 무승부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기자들이 왜 끝장을 봐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안하냐. 기자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니까 선진야구가 안된다”며 기자회견에서 대성일갈했다.
그러나 김재박 감독은 “2차전 후에는 아무 얘기도 없다가 그런다”는 반응을 보였다. 2차전 막판 위기를 모면하고 8-8로 비겼을 때는 좋아서 아무 말 않더니 4차전이 끝난 뒤에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비겼다는 생각에 분통을 터트렸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