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영욕의 역사
OSEN 정연석 기자 < 기자
발행 2004.11.02 17: 2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4 한국시리즈가 끝이 났다.
삼성은 올해도 이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단지 승자의 위치가 아닌 패자로서 승자의 환희를 그저 망연자실하게 쳐다 볼 수밖에 없을 뿐.
삼성은 지난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제외하면 한국시리즈 진출은 이번이 열 번째이고 지난 2002년 우승이 사실상 유일하다. 한국시리즈 우승 승률은 단 1할.
삼성의 영욕의 한국시리즈 도전사를 살펴보자.
삼성은 프로야구 출범 원년이던 82년에 후기리그 우승팀으로서 전기리그 우승 팀인 OB(당시)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1차전을 대구에서 9-0으로 이긴 후 2차전을 적지에서 3-3으로 비겨 프로야구 첫 원년 챔프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렸으나 서울에서 연속 4연패를 당했다. 당시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이상 정규시즌 15승)의 필승카드가 있었음에도 허무하게 패배했다.
84년에 전기리그를 우승하며 OB와 한국시리즈 대결을 피하기 위해 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롯데에 일부러 져주는 추태를 보이면서까지 우승에 대한 집착을 보였지만 결국 최동원(한국 시리즈 4승)의 무릎 앞에 고개를 숙였다.
85년에는 전년도의 삼성의 ‘져주기 사건’을 보완하기 위해 종합승률제로 제도를 변경했다. 삼성은 전/후기 각각 우승, 승률 1위로 아예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키며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삼성은 혼자 감수해야 했다.
86년에는 김시진(현 현대유니콘스 투수코치)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렸으나 현 삼성감독인 김응룡 감독의 해태타이거스에 4-1 완패. 특히 대구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역전패하자 흥분한 관중들이 해태 선수단 버스에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87년은 전년 한국시리즈에 한술 더 떠 그 해 타격왕(장효조) 홈런왕(김성래) 다승왕(김시진) 타점왕(이만수)을 거머쥐어 말 그대로 드림팀이었던 삼성은 해태에 4-0패. 이 당시부터 삼성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새가슴’팀이란 오명을 달게 됐다.
지난 90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3연승으로 격파하면서 정규리그 1위팀인 LG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으나 87년에 이어 시리즈 전패를 당해 두 번째 한국시리즈 전패의 진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93년에는 해태에서 방출한 박충식이 선발투수로 나서 15회 연장까지 151개의 공을 던져 삼성맨(?) 답지 않은 패기를 보여줬고 4차전까지 2승1무1패로 앞서 나가자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로 삼성이 시리즈를 앞서 나갔다고 당시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남은 세 게임에서 내리 3연패. 결국 삼성만의 야구를 정립시켰다는 이정표만을 남기게 됐다.
2001년은 지난 7년동안의 와신상담. 당시 멤버만 놓고 보면 과거에도 그랬듯이 국가대표팀 그 자체였다. 김응룡 감독을 필두로 양준혁 이승엽 마해영 임창용 등. 두산과의 1차전은 가볍게 승리했지만 내리 3연패후 1승. 그리고 1패. 삼성은 우승을 위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애써 자위하기에 급급했다.
2002년은 우승에 목말라 했던 대구 관중이 경기 중 폭죽을 터뜨려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될 정도로 당시 삼성의 우승은 당연시됐다.
하지만 삼성의 상대 팀이었던 LG는 시리즈 진출로도 만족해 했던 팀이었고 삼성은 쉬운 경기마저 어렵게 만들어 신승을 거두는 묘미를 우승에 목말라 했던 팬들에게 아낌없이 선사했다.
결국 4승2패로 85년 통합우승 후 7년만에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고 한국시리즈 진출 첫 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
2004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난전의 해였다.
한국시리즈에서 82년(원년), 93년 무승부를 기록하면 시리즈는 어김없이 상대 팀에게 넘겨준다는 징크스를 만들었던 삼성. 무승부가 한 번만 나와도 진다는 시리즈에서 세 번씩이나 비기며 새 역사를 노렸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