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출범 원년부터 덕아웃을 지켜 온 김응룡 삼성 라이온스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10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안은 김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사의 산 증인이다. 출범 후 4반세기 가깝게 흘러온 한국 프로야구는 김응용이라는 이름 석자를 거론하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깊은 족적을 남긴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감독직 제의도 못 받고 섭섭했지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김응룡 감독은 미국 조지아 서던 칼리지에 야구 유학중이었다. 현역으로 뛰던 한일은행 시절 국가대표 4번 타자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에게 감독 제의가 올 법도 했으나 단 한 팀도 그에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연락한 구단이 없다고 한다.
김 감독은 훗날 원년에 단 한 팀도 감독을 맡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못내 섭섭했다고 하며 프로야구 개막전도 몰래 귀국해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82년 말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 감독을 영입하는 행운을 잡은 팀은 해태 타이거즈. 전기리그가 시작한 지 1개월여 만에 김동엽 감독을 해임하고 조창수 대행 체제에 있던 해태의 정기주 단장은 김 감독에게 “박건배 구단주가 김 감독을 원한다”며 팀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고 김 감독은 흔쾌히 승낙하고 1983시즌부터 해태 벤치를 지켰다.
▲신화의 스타트
김응룡 감독은 해태를 1983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에서 후기리그에서 우승한 MBC 청룡을 4승 1무로 일축하고 첫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해태의 우승에는 MBC 선수들의 태업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MBC 선수들은 후기리그 우승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 구단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사보타주로 대응했고 해태는 자중지란에 빠진 MBC를 가볍게 누르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첫 한국시리즈 우승부터 김 감독에게는 행운이 따른 것이다.
▲대전구장 심판실 난입 사건
김 감독은 심판 판정에 강하게 어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로는 육탄전도 불사하는 그의 불 같은 성질이 처음 표출된 것은 1983년 6월 14일의 대전구장 심판실 난입사건.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던 해태는 이날 경기에서 OB를 11-5로 꺾었지만 1회초 김무종의 홈런이 파울볼로 판정번복된 것에 불만을 품은 김 감독은 경기 후 심판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김옥경 구심을 구타했다.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 된 김 감독은 KBO의 중재로 벌금 100만원을 물고 풀려났으며 KBO는 50만원의 벌금과 3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불고기 화형식
8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해태는 84년 전기리그 5위, 후기리그 3위의 부진한 성적에 머문다. 해태의 몰락은 전년도 우승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여긴 선수단의 사기 저하에 따른 것이다.
당시 유명한 사건이 바로 해태 선수단의 ‘불고기 화형식’ 4월 10일 잠실 첫 경기를 치른 후 박건배 구단주의 주최로 열린 저녁 회식자리에서 선수들이 석쇠에 올린 불고기를 까맣게 태우며 무언의 시위를 한 것.
김응룡 감독은 이 사건으로 대노했으며 ‘도루왕’ 김일권이 주동자로 몰려 김응룡 감독과 냉랭한 관계가 된 끝에 1988년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됐다.
▲김응룡 VS 김영덕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김응용 감독은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전무후무할 대기록을 달성했고 1991년과 1993년에 징검다리로 우승컵을 안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김응룡 감독에게 수모를 당한 이가 아마 시절 팀 선배였던 라이벌 김영덕 감독이다. 김영덕 감독은 김응룡 감독에 한발 앞서 한국 최초의 500승 고지에 오르는 등 정규리그 운영에는 탁월한 솜씨를 보였지만 늘 한국시리즈에서는 김응룡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영덕 감독은 1986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던 삼성 라이온스를 이끌고 한국시리즈에 도전했으나 해태에게 1승 4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물러나고 만다. 김영덕 감독의 ‘호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88년 빙그레 이글스의 사령탑으로 다시 한번 김응룡 감독과 맞붙지만 2승 4패로 고배를 들었고 1989년에는 1승 4패, 1991년 한국시리즈에는 4연패의 수모를 당한다.
김응룡 감독은 당시 김영덕 감독의 ‘선동렬 공포증’을 역이용하는 비상한 속임수로 번번이 김영덕 감독과의 머리 싸움에서 승리했다. 김영덕 감독은 ‘선동렬이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경기를 포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동렬을 피해가기 위해 갖은 묘책을 냈다. 그러나 실제로 김영덕 감독이 당한 것은 선동렬이 아닌 김정수 문희수 등 의외의 투수였다.
▲심판진 흔들기로 우승(?)
김응룡 감독은 1996년 8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다. 당시 선동렬의 은퇴와 김성한의 은퇴로 ‘꼴찌 후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해태는 특유의 집중력과 팀웍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는 김응룡 감독의 교묘한 심리전도 한 몫했다. 김 감독은 4차전에서 정명원에게 노히트노런의 수모를 당한 후 “허운 김호인 등 인천 출신 심판들의 노골적인 현대 편 들어주기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들을 계속 심판으로 기용하는 한 한국시리즈에 나서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으로 심판진과 현대 벤치를 흔들었다. 김응룡 감독의 노림수가 적중, 해태는 5차전과 6차전에서 연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안았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심판진 매수설은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털어 놓았다.
▲하와이 항명 파동 진압하고 2연패
해태는 1997년 2월 하와이 전지 훈련에서 팀 창단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코칭스태프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고참 선수들이 집단 반발, 주먹 다짐이 벌어지는 불상사가 빚어진 것.
감독 취임 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김응룡 감독은 사건 당사자를 해고하려는 구단을 설득해 위기를 수습하고 9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용병술을 과시했다. 김 감독은 당시 하와이에서 귀국한 뒤 한동안 ‘잠수’를 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단 측이 사태 수습을 위해 자신을 찾느라 분주해도 모른 척 하던 그는 한참 후에야 나타나 조용히 사건을 처리하는 탁월한 위기 타개책으로 다시 한번 코끼리의 외모를 가진 여우임을 입증했다.
▲대구 시민의 20년 숙원 풀다.
김응룡 감독은 2000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태를 떠나 한국시리즈 우승 염원을 풀어줄 청부사로 삼성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러나 삼성에서의 첫 시즌인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2승 4패로 패퇴했다. 항간에는 '천하의 김응룡도 삼성의 한국시리즈 징크스는 깨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았으나 김 감독은 2002년 마침내 삼성을 한국시리즈 첫 정상에 올려놨다.
김 감독은 부임 후 삼성 특유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타파하고 스타플레이어들과 구단 프런트들을 휘어 잡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 ‘모래알 야구’를 한다는 삼성을 끈끈한 승부 근성을 가진 팀으로 변모시켰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자라는 이승엽에 대한 그의 공개적 질책은 그의 스타 길들이기를 잘 보여주는 단면. 그는 이승엽이 타격 부진에 빠지자 “영양가 없는 홈런은 많아봐야 소용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6번 타자로 타순을 강등시키는 충격 요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4 한국시리즈에서는 김재박 감독과의 고도의 심리전과 설전을 벌이며 화제를 몰고 왔고 결국 9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 은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사상 최초로 야구인 출신 구단 사장에 취임하며 프로야구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김응룡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1941년 9월 15일
▲출신교: 부산상고-우석대
▲키/몸무게: 185cm/95kg
▲주요경력:
1960년 한국운수
1961년 남선전기
1962년 한국미곡창고
1963년 한국통운(전 한국미곡창고)
1963년 제5회 아시아선수권 우승(육군)
1964년 크라운맥주(전 조선맥주)
1965년 홈런왕
1966년 한일은행(크라운맥주 인수 재창단)
1967년 홈런왕
1971년 제9회 아시아선수권 우승
1972년 은퇴(통산 타율 3할7리)
1973년~1981년 한일은행 감독
1977년 제3회 대륙간컵 우승
1981년 9월~1982년 12월 조지아서던칼리지 유학
1983년 해태 감독
1983, 86~89, 91, 93, 96~97,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및 최우수 감독상
1998년 6월 7일 프로야구 최초 한 팀서 1000승
2000년 4월 9일 프로야구 최초 2000경기 출장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 감독(동메달)
2001년 삼성 감독
2004년 4월 28일 1400승 달성
2004년 11월 9일 삼성 감독 사임(통산 1653경기 출장, 1463승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