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무상한 세월이여
OSEN 정연석 기자< 기자
발행 2004.11.23 00: 00

23일 새벽 심정수와 박진만의 계약 성사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기자의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현대구단 관계자였다. 심정수와 박진만의 계약 성사여부를 물은 이 관계자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예전같으면 삼성과 한 판 승부를 벌일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는 그 동안 박진만과의 밀약설 등이 나돌 때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속내는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워낙 거물이라 내부적으로 타팀으로 이적을 기정사실처럼 여겼던 심정수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4년간 40억 원을 달라는 박진만을 붙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현대는 예상 외로 많은 액수라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결국 박진만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1995년 태평양을 인수, 프로야구판에 뛰어든 현대는 모기업이 어려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삼성과의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편이었다. 스카우트면 스카우트, 트레이드면 트레이드, 선수연봉을 둘러싼 자존심 싸움에서도 삼성에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현대프런트에 형성되어 있었다.
삼성이 2002년 창단 후 처음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지만 현대는 96년시즌부터 올해까지 4번이나 한국시리즈패권을 차지했다.
일등주의를 표방하는 삼성도 현대의 불도저 정신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곤했다.
98년 쌍방울에서 뛰던 당대 최고의 포수 박경완을 무려 9억 원의 트레이드머니를 주고 스카우트할 때만 해도 현대는 거칠 것이 없었다. 또 2000년 이승엽과 정민태가 최고연봉을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일 때 정민태에게 단돈 10원이라도 더 줘 최고연봉선수로 만들겠다는 불퇴전의 현대 캐치프레이즈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현대를 큰 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삼성과 재계서열 1, 2위를 다투던 모기업이 IMF를 거치면서 어려워져 투자할 돈도 여력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새 골리앗에서 다윗으로 전락한 현대. 이 관계자는 "삼성이 돈을 쓰겠다는 걸 말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시장원리에 걸맞은 상도의는 지켜야 공존공생하는 것 아니냐"며 씁쓸하게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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