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입니다.
당초에는 미디어 여러분들과 인터뷰 형식으로 만나 제 입장을 밝히려 했으나 FA컵 대회 중이라 불가피하게 서신을 통해 만나게 된 점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합니다.
제가 FC서울의 전신인 안양LG팀 감독으로 계약해서 활동한지 벌써 6년이 됐습니다. 이 6년간의 시간은 제 축구인생에 많은 경험과 기쁨, 아쉬움이 점철된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2004시즌은 팀 연고지가 서울로 바뀌면서 어느 때 보다도 주위의 기대도 컸고 저 자신의 욕심도 컸지만 목적한 우승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구단과 저를 아끼는 주위의 선, 후배들은 올해 이루지 못한 성적을 내년 시즌에 기약하자고 격려를 했지만 정규시즌이 종료된 뒤 곰곰이 생각한 결과 프로감독으로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과 재충전과 휴식이 필요한 적절한 시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6년의 재임 시간을 반추해보면 K리그우승과 슈퍼컵까지 차지했던 2000년의 기쁜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도한 2001년 K리그 2연패 문턱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아쉬움에 당시 몇 날 밤 잠 못 이루며 소주잔으로 아쉬움을 달랬던 기억도 팀을 떠날 결정을 하니 더 진하게 다가옵니다.
보람도 있었습니다.
팀을 맡은 후 어린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고교 유망선수들을 영입해 팀의 주전으로 활용했고 나아가 각급 국가대표선수로 성장시킨 것은 2000년 팀이 우승을 차지 가슴 뜨겁던 기쁨이상 더 진한 보람이었습니다.
김동진, 최원권, 박용호, 최태욱, 김치곤, 김병채, 정조국, 한동원, 김승용 등등…
이 선수들을 영입해 주전으로 뛰게 할 때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분명한 소신을 갖고 세대교체와 더불어 경험을 쌓게 해 오늘 날 청소년대표팀이나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성장시켜 대표팀 경기력 향상에 기여한 것은 지도자로서의 자부심과 보람입니다.
물론 이 선수들이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무더기로 차출돼 최근 2년 간 성적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했었지만…
또 이영표, 최용수, 이을용선수의 해외 이적 대도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선수의 장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던 일도 참 잘했다는 소회를 갖게 합니다.
당시 이 결정을 하기 전 저도 성적에 목을 매는 감독입장에서 밤 잠 못 자고 몇 번의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이 역시 최근 2년 간 성적 부진의 부메랑이 돼 제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역시절 남보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고집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도자로서 활동하면서는 연구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코칭철학으로 팀을 지휘했던 지난 6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선수 경험과 지식, 전문성 못지 않게 필요한 덕목이 어질 ‘인’과 ‘덕’이라는 지혜를 얻게 됐습니다.
제가 FA컵 대회 중 사퇴를 결심한 것은 구단이 시간을 갖고 후임감독을 선임 해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6년의 FC서울과 안양LG감독 역할 수행은 저에게 많은 경험을 얻게 했습니다. 또 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강한 집념의 과제도 깨 닿게 했습니다.
팀을 떠나기로 결심한 후 주마등처럼 지나치는 얼굴들이 많습니다.
6년 간 부족한 제가 감독직을 수행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구단관계자들과 친형제처럼 팀을 아끼고 성원해준 구단임원동호회에 감사함을 표합니다.
또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기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해준 후배지도자 이영진, 김귀화, 손현준 코치의 노고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울러 비가 오나 눈이오나 늘 FC서울을 목청 높여 외치며 응원해준 서포터스의 열정에 올시즌 우승으로 보답하지 못하고 떠나는 저는 서포터스 여러분들에게 큰 빚을 지고 가는 심정입니다. 제가 어렵고 힘들 대 가장 큰 힘은 바로 서포터스 여러분들의 북소리와 함성이었습니다. 혹 퇴임 후 기회가 닿으면 여러분들과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며 ‘축구의 미학’에 대해 밤새 터놓고 얘기했으면 하는 희망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사임 후 우선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을 할 생각입니다. 물론 새로운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한 계획도 구상할 것입니다.
FC서울팀 감독자리에서는 떠나지만 제 가슴에 품고 있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더 정진하겠습니다. 새로운 목표란 재충전 뒤 그라운드에 복귀해 팬들의 갈망하는 재미있고 화끈한 공격축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감독의 꿈인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거듭나는 일 역시 꼭 이뤄야 할 제 인생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그동안 저를 성원하고 아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2004년 12월 14일 양산에서 조광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