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기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가장 우승할 확률이 높은 팀에서 월드시리즈 정상의 꿈을 이뤄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양키스로 와서 우승 한을 풀었다. '밤비노의 저주'로 우승과 연을 맺지 못하던 로저 클레멘스, 웨이드 보그스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양키스에서만 14년을 뛰고도 월드시리즈 정상은 커녕, 월드시리즈 경기에 서보지도 못한 '비운의 양키'가 있다. 현재 뉴욕 양키스 타격 코치인 돈 매팅리가 그 주인공. 1980년대 양키스의 간판이었던 그는 현역 생활 마지막 해이던 1995년 디비전시리즈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해보지 못했다. 매팅리 다음 세대의 양키스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데릭 지터가 데뷔한 지 5년 만에 4개의 챔피언 반지를 챙긴 것과 대조적이다.
매팅리는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다음 해인 1982년 빅리그에 데뷔,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 전년도인 1995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통산 3할7리의 타율과 222홈런 1019타점을 기록한 그는 화려한 현역 생활을 하며 '스타군단' 양키스의 간판 타자로 군림했다. 1985년 아메리칸리그 MVP로 뽑혔고 올스타 6번 선정, 1루수 골드글러브 9번 수상의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우승 샴페인을 터트리지 못했다. 1995년 디비전시리즈 진출도 당시 처음 도입된 와일드카드제에 힘입은 것이었다.
매팅리의 현역 시절 양키스가 돈을 쓰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선수로 구성됐을 리 만무하다. 그는 데이브 윈필드, 돈 베일러 등과 중심 타선을 이뤘고 켄 그리피 시니어, 리키 헨더슨, 론 기드리, 필 니크로 등 쟁쟁한 이름들이 그와 한솥밥을 먹었었다.
그러나 운이 지독히도 따르지 않았다. 그가 MVP를 수상하며 최고의 해를 보냈던 1985년에는 97승 72패라는 호성적을 올리고도 선두 토론토에 2게임 차로 뒤지며 동부지구 2위에 머물렀다. 같은 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양키스에 6승이나 모자라는 91승을 거두고도 서부 지구에서 우승, 결국 월드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다.
1990년에는 양키스 선수으로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꼴찌의 수모까지 맛봤다. 베이브 루스가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1920년 이후 양키스가 꼴찌를 차지한 것은 1966년과 1990년 두 차례뿐이다.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1994년은 매팅리에게 천추의 한으로 남을 만하다. 샐러리 캡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갈등으로 시즌이 취소되고 말았다. 당시 양키스는 2위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6.5 게임 차로 따돌리고 지구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5일 발표되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 후보에 매팅리의 이름도 올라 있긴 하지만 그는 헌액자 후보에 거론조차 되고 있지 않다. 매팅리 시절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면 '양키스 프리미엄' 과 그의 스타성을 고려해볼 때 충분히 헌액자 후보로 거론됐을 것이다.
월드시리즈 우승,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