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갈등 해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홍명보는 1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흑인들의 최대 행사인 '마르틴 루터 킹 축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스타로 참가했다.
이 행사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고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는 축제로 그의 이름을 딴 '마르틴 루터 킹 길'에서 시작돼 크랜셔길까지 이어졌다. 주최는 흑인들이었지만 행사에는 한인, 히스패닉, 흑인들이 고루 참가했다.
홍명보는 1시간 가량 진행된 이 행사에 참가해 가족 조수미씨, 자녀 2명과 함께 자동차에 올라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무려 120만명의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
한인과 흑인은 지난 92년 LA 흑인 폭동 이후 짙은 앙금이 남아있었다. 겉으로는 화해의 악수를 나눴지만 피해자인 한인과 가해자인 흑인 사이의 마음의 벽은 좀처럼 무너지기 힘들었던 것.
그러나 이번 축제를 계기로 한인과 흑인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는 평이다.
홍명보는 "한인과 흑인의 갈등을 푸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갈등 해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홍명보는 1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흑인들의 최대 행사인 '마르틴 루터 킹 축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스타로 참가했다.
이 행사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고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는 축제로 그의 이름을 딴 '마르틴 루터 킹 길'에서 시작돼 크랜셔길까지 이어졌다. 주최는 흑인들이었지만 행사에는 한인, 히스패닉, 흑인들이 고루 참가했다.
홍명보는 1시간 가량 진행된 이 행사에 참가해 가족 조수미씨, 자녀 2명과 함께 자동차에 올라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무려 120만명의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
한인과 흑인은 지난 92년 LA 흑인 폭동 이후 짙은 앙금이 남아있었다. 겉으로는 화해의 악수를 나눴지만 피해자인 한인과 가해자인 흑인 사이의 마음의 벽은 좀처럼 무너지기 힘들었던 것.
그러나 이번 축제를 계기로 한인과 흑인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는 평이다.
홍명보는 "한인과 흑인의 갈등을 푸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