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비삼성의 ‘1:7의 싸움’으로 재편된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판도에서 또 다른 ‘작은 싸움’이 팬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예컨대 이순철 LG 감독은 이미 절친한 친구 선동렬 삼성 감독을 상대로 모기업간 라이벌 의식을 부추기며 정면 도전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조범현 SK 감독은 다른 각도로 삼성에 접근한다. 포수 출신 사령탑과 투수 출신 감독간의 지략 싸움에서 이겨보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을 이끌고 있는 조 감독은 “전체적인 전력이 비교적 고르게 갖춰진 만큼 올 시즌은 자신 있다”며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좌절했던 순간을 이번에는 반드시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23년의 한국 프로야구 최장수 감독을 마치고 야구인으로는 처음으로 구단 최고 경영자에 오른 김응룡 삼성 사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투수 출신 감독이 성공하는 것 봤어?”라고. 투수는 민감하고 때로는 개인적이다 보니 투수들끼리 뭉쳐 다니는 게 다반사다. 전체적으로 팀을 통솔하기에는 장악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감독을 보면 투수 출신은 드물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뉴욕 양키스의 조 토리 감독,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밥 브렌리 감독, 2002년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 등이 명장 반열에 오르면서 야수 중에서도 포수 출신 감독의 전술이 높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선수시절부터 전체를 조율하고 바라보는 능력이 우수했던 덕분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투수 출신 지도자의 성공 신화가 두드러졌다. 두산 시절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인식 한화 감독을 비롯, 페넌트레이스 운영의 귀재라던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 데이터 야구의 김성근 전 LG 감독 등이 그들이다.
조범현 감독은 김성근 감독을 따라 충암고 시절부터 작전 공부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벌써 30여년 가까운 세월이다. 작전에 대한 노하우, 야구를 읽는 자기만의 비법이 있다. 2003년 초보 사령탑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을 때 조 감독의 작전 야구를 높이 사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조 감독은 “하루 또는 한 달의 데이터를 가지고 상대 팀이 누구든 그날 그날 상황에 맞춰 우리의 갈 길을 가겠다”며 시즌 운영 구상을 밝혔다. 이어 “삼성이 최강의 전력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우리 성적을 보면 승수를 쌓을 수 있는 어느 한 팀을 못 잡아서 그렇지 모든 팀과 상대전적에서 엇비슷한 성적을 유지해왔다. 삼성을 피해가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페넌트레이스를 운영하며 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삼성과도 재미있는 승부를 펼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조 감독은 “선 감독이 어떻게 작전을 구사하는지 아직 보지 못해 할 말은 없으나 대투수였고 지난해 마운드 운영도 잘 하는 것을 볼 때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신중함 속에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2003년 처음 감독에 오르고도 처음 작전을 낼 때 전혀 떨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준비된 감독’이었다는 얘기였다. 삼성에 비해 약간 뒤처지는 전력을 벤치 능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4강 경쟁팀으로 꼽히는 삼성 LG 기아 SK에서 3년차인 조 감독이 1~2년차인 여타 감독에 비해 가장 베테랑(?)이기도 하다.
그는 “시즌 초반인 4~5월이 중요하다고 선수들에게 많이 강조하고 그 때까지 페이스를 올리도록 주문했다. 아직까지 우리 실정에서 막판에 뒤집는 능력은 부족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치고 올라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광속구’ 투수 엄정욱의 분발과 발빠른 신인 정근우와 조동화, 한 방 있는 김재현과 박재홍의 가세로 조 감독의 작전의 폭은 분명 넓어졌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두 명의 용병을 모두 투수로 뽑은 조 감독은 “마운드 운영에 승부를 걸겠다. 부상자만 없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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