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에는 4번타자가 없다?"
웬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반문할 야구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기아에는 변변한 4번타자가 없었다. 1982년 출범 이후 90년대 말까지 프로야구계를 호령하며 9번이나 한국시리즈정상에 올랐던 해태 시절과 달리 기아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후 딱 떠오르는 4번타자가 없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기아는 거포 부재에 시달리며 포스트시즌에서 번번히 실패를 맛봤다. 물론 선동렬 같은 특출난 투수가 없는 탓도 크지만 타선의 핵이자 상대 팀에게 위압감을 줄 만한 4번타자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기아는 2003년 현대에서 박재홍, 지난해에는 삼성에서 마해영을 영입했다. 그러나 둘 다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올해에는 "기아에 4번타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세완(27)이 명가 부활여부의 키를 쥔 붙박이 4번타자감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까지 홍세완은 미완의 대기였다. 2000년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기아에 입단한 홍세완은 2001년 당시 김응룡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팀의 중심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전경기에 출장하며 2할9푼3리의 타율에 14개의 홈런을 때렸다.
그러나 이듬해 크고 작은 부상과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로 주가가 급락했다. 2할5푼7리의 타율에 홈런은 12개에 그쳤다. 2003년 2할9푼의 타율에 생애 시즌 최다인 22개의 아치를 그려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지난해 또 다시 크고 작은 부상으로 기대에 못미쳤다. 타율은 2할9푼5리로 생애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홈런은 15개에 그치는 등 팀의 중심타자로서 제몫을 해내지 못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지난해 1억2000만원이었던 연봉이 24%나 깎여 올해 연봉은 9600만원.
연봉 삭감의 칼날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진 홍세완. 그가 올 시즌이 다가오면서 예사롭지 않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6차례 청백전을 벌여 홍세완은 팀내 최고인 4할5푼8리의 타율을 기록헀다.
아무리 청백전이라고 하지만 홍세완의 타격감이 예사롭지 않음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홍풍'(洪風)이 결코 일과성 돌풍으로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지난 27일 끝난 대만 프로야구 통이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 그대로 입증됐다.
홍세완은 2차례의 친선경기에서 7타수 6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27일 열린 3차전에서는 혼자 3타수 3안타 3타점을 올리며 MVP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홍세완이 파워히터라는 평가와 더불어 정교함까지 갖추게 된 원동력은 바깥족 볼을 공략하는 능력이 눈에 띠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홍세완은 지난 시즌까지 전형적인 풀히터였다. 바깥쪽 볼에는 거의 방망이가 잘 나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대투수들은 홍세완에게 바깥쪽을 볼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그러다보니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통이 라이온스전에서 때려낸 6개의 안타 가운데 4개가 밀어친 것이었다. 모두가 바깥쪽 볼을 제대로 공략해 만들어낸 안타였다.
당초 야수들과 함께 1월 26일 하와이 전지훈련지로 떠날 예정이었던 홍세완은 자원해서 투수들과 함께 15일에 조기 출국했다. 따뜻한 곳에 빨리 훈련을 하고 싶어했던 까닭이다.
홍세완이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하체훈련과 밀어치기. 평소 무플이 않좋은 홍세완은 하체보강으로 무릎을 강화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 또 풀히터라는 고질적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하게 바깥쪽 볼을 공략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바깥쪽 볼에 자신감이 생겼다.
바깥쪽 볼을 제대로 공략한다면 홍세완은 다른 팀 투수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바깥쪽 약점을 파고들 수 없기 때문이다. 홍세완은 이런 점을 역이용, 투수들을 공략할 심산이다.
바깥쪽 볼을 제대로 때리다 보면 투수들이 몸쪽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이럴 경우 홈런타자로서 성가를 드높일수 있다는 게 홍세완의 생각이다.
그래서 홍세완은 올시즌 개인적인 목표를 30홈런-100타점으로 잡았다. 물론 팀 우승이 첫 번째 목표다. 하지만 홍세완이 30홈런-100타점만 기록해 준다면 기아로서는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4번타자 부재라는 고질적인 약점 때문에 번번이 대권 문턱에서 주저앉았지만 홍세완이 그몫을 해준다면 팀 타선에 미치는 시너지효과는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칭스태프는 "타율도 최소 3할2푼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지만 홍세완은 타율에 개의치 않겠다는 계획이다. 타율은 경기에 집중하다보면 올라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홈런을 많이 때리면 타점도 많이 올라가고 타율도 높아질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80%정도까지 몸상태를 끌어올렸다는 홍세완은 올시즌 찬스에 강한 클러치히터, 아니 4번타자의 진면목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그의 목표대로 30홈런-100타점을 달성하고 기아를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정상으로 이끌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지난 27일 대만의 타이난에서 벌어진 통이 라이온스와의 친선경기서 기아의 유격수 홍세완이 병살 플레이를 시도하고 있다./기아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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