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상고 장준관, 경북고 배영수. 6년이 지난 사이 이들의 위상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삼성은 1999년 고졸 1차 지명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청룡기 우승을 이끈 장준관이냐, 145km 이상 강속구를 뿌리지만 컨트롤이 엉망이었던 배영수냐를 놓고 한참을 저울질 한 끝에 배영수를 찍었다.
고교 시절에는 장준관이 배영수보다 비교 우위에 있었다. 98년 황금사자기 우수 투수상은 물론 이듬해 청소년 대표에 뽑혔던 장준관은 그 해 청룡기에서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며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삼성은 배영수를 택하면서 역대 팀 고졸 최고 계약금인 2억 5000만 원을 안겨주며 기대를 나타냈고 LG도 2차 1순위로 장준관을 찜하면서 배영수보다 많은 2억 8000만 원을 책정, 자존심을 세워줬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프로 6년차에 접어든 이들의 위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배영수는 한국 최고 투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삼성의 에이스로 무럭무럭 성장한 반면 장준관은 특별한 부상이 없었음에도 1군보다는 2군에서 주로 활약하는 선수로 전락했다.
프로 선수들은 “2군에 있으면 2군 선수가 되고 만다”며 자조적인 말을 하곤 한다. 심하게 말해 장준관은 2군 선수가 되고 말았다. 입단 첫 해인 2000년 1군 무대에서 20경기를 뛴 뒤 별다른 활약없이 구리에 머물다 지난해 12게임을 1군에서 뛴 게 전부였다.
이순철 LG 감독은 지난해 마무리훈련-스프링캠프를 거쳐 많이 성장했다고 판단한 장준관에게 정재복과 함께 셋업맨 임무를 맡긴다고 선언했다. 그에 따라 장준관은 28일 고향 대구에서 벌어진 삼성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준관은 4-5로 뒤진 7회부터 등판했다. 1점차였고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 감독은 장준관을 믿고 내보냈다. 그러나 그는 진갑용을 볼넷에 이은 폭투로 2루까지 내보낸 뒤 박한이의 중전 안타로 한 점을 허용했다. 8회에도 선두 김재걸을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폭투를 또 범했고 박석민을 볼넷으로, 다시 1사 후 박종호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며 위기를 자초했다. 양준혁에게 중전 안타를 내주며 너무도 쉽게 2실점했다. 승부의 추는 완전히 삼성쪽으로 기울었다.
1⅓이닝 동안 그가 보인 투구는 2피안타 2몸에 맞는 볼, 폭투 2개 4실점. 자신감을 상실한 그의 투구에 LG의 추격 의지도 덩달아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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