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재미있더라구요”.
3번을 도전한 끝에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진출하게 된 조성민(32ㆍ한화)은 여유가 넘쳤다. TV 해설위원을 하다 전격적으로 선수 유니폼을 입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을 감행한 그는 여전히 재야의 뉴스메이커였다. 지난 6일부터 대전구장에서 재활군과 함께 훈련에 들어간 그를 만나봤다.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그는 지난해 6월 이후 거의 1년만에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해설가에서 선수로 변신한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선수였을 때는 순전히 내 시각에서 ‘우리 팀 이겨라’는 식으로 야구를 봤다. 하지만 해설을 하다보니 양쪽 팀의 상황을 다 살펴봐야 하고 상황별로 자세하게 지켜보게 됐다. 예전에 한국 프로야구를 볼 때는 재미가 없어서 아는 선후배가 나오는 게임 잠깐만 보다가 채널을 돌리곤 했다. 그런데 해설을 하다보니 한국 야구가 재미있었다.
-한국 야구 수준을 어떻게 봤는가.
▲물론 아직 일본에 뒤진다. 배영수 등 수준급 투수가 있는데 반해 전체적인 수준은 아직 레벨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볼카운트 2-0의 유리한 상황에서 투수가 자신감이 없다 보니 불리하게 몰려 결국 어렵게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히 말해 언제쯤 출전할 수 있는가.
▲속성이라면 올 시즌을 마치기 전에도 가능하다. 내년 시즌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부터 1년 계획을 잡아 훈련할 것이다.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8~9월에도 나설 수 있지 않겠는가.
-팔꿈치와 구속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있다.
▲그건 나도 의문이다(웃음). 1998년 팔꿈치 부상 후 두 번의 수술과 재활을 거쳤는데 지금 팔꿈치는 아프지 않다. 구속은 142~143km만 나와도 내 공을 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미우리에서 퇴단 직전 마지막으로 공을 뿌렸을 때 136~137km가 나왔다. 그러고도 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예전처럼 147~148km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140km대 초반만 나와도 타자를 요리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두 번이나 실패했던 드래프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2003년도 처음 도전할 때 수원 성균관대에서 후배들과 훈련하다 스피드건으로 재보니 직구가 131km가 나왔다. 훈련 초반이었던 때라 시간만 지나면 충분이 140km대까지는 나올 수 있을 것이라 봤다. 당시 나를 보기 위해 기아 한화 등에서 스카우트들이 왔지만 딱 두 번 왔고 스피드건으로 내 구속을 재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직구가 110km밖에 안 나온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돌았고 지명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에 두 번째로 도전했지만 역시나, 버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즌 중 전격적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지난달 청주(한화-LG전)에서 중계를 했는데 당시 김인식 감독님이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며 독려해주셨다. 대학 시절 친했던 선후배들이 많지만 내 진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상의를 하거나 얘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절대 보안을 유지했고 부모님께도 계약하는 날(5일) 구단 사무실로 가면서 말씀드렸다. 집에서는 “뭐?”라며 상당히 놀라셨다.
-3수까지 하면서 야구를 다시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002년 요미우리에서 퇴단하면서 일본 말고 다른 곳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던 생각이 강했다. 그곳에서 차별이 너무 심해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았는데 야구를 그만 뒀다. 팔꿈치가 아프다고 핑계를 댔는데 요미우리측에서는 ‘병원에 가보자, 수술을 해보자’며 끝까지 나를 잡았다.
요미우리에서 나와 미국쪽에서 뛰고 싶어 일을 추진했다.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일단 기량을 확인한 뒤 제대로 된 입단 테스트를 받는 형식을 취하고 싶어 그 쪽에 계신 분과 일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일이 지연되고 결국 없던 일이 되면서 한국 프로야구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드래프트에서 두 번이나 미역국을 마시면서 충격으로 상당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졌다. 한 3개월 동안은 거의 쓰러져 지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줬나.
▲일이 잘 안 풀리자 다시 야구가 아닌 사업을 해볼 생각으로 여러 구상을 하고 있는데 2월쯤 설이 지나고 허구연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해설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해서 약간의 고민 끝에 제의를 받아들였다.
-동기생인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처럼 투심으로 부활할 생각은 없나.
▲투심은 신일고 시절 많이 던졌다. 투심과 슬라이더로 타자를 요리하는 데 재미를 봤던 시절이다. 그런데 고려대 입학하고 나서 허리 수술을 했고 한 달 반 정도 쉬면서 투심 잡는 법을 한 순간에 잊어버렸다. 그 이후에 배운 게 싱커다. 일본에서도 싱커를 주무기로 삼았다. 그라운드에 나서게 되면 싱커로 부활하고 싶다.
-지금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나.
▲공을 던질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게 먼저다. 첫날은 무조건 걷기만 했다. 조만간 제대로 볼을 만질 것이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사우나로 하루를 시작한 뒤 야구장에 나와 오후 1~2시까지 팀 스케줄에 맞춰 훈련한다. 이어 헬스클럽으로 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밤 늦게까지 하루에 6~7시간 정도 하는 편이다. 몸무게는 2002년 퇴단 당시와 별 차이가 없는 107kg이다. 4kg 정도 늘긴 했지만 그것도 최근에 살이 찐 것이다.
-일본식으로 훈련 때 많이 던지는 게 유행이다.
▲선수마다 특성이 있어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많이 던지지는 않았다. 일본에서도 스프링캠프에서 하루에 많아야 120~130개 정도, 평균 70~80개 정도 던졌다. 러닝도 다른 선수들이 하는 정도로만 뛰었지 산을 탄다거나 그런 것은 예전부터도 하지 않았다.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하체를 강화하고 있다.
-늦게 들어온 만큼 각오가 남다를 텐데.
▲몸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일단 보직이 정해질 경우 코칭스태프가 믿고 맡겨 주면 좋겠다. 선동렬 삼성 감독처럼 예전부터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한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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