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맘때 '코리안 특급' 박찬호(32)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2001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달러라는 대박계약을 맺은 후 부상으로 헤매던 박찬호는 이때도 허리 통증으로 이적후 5번째로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5월21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화이특삭스전 선발 등판을 앞두고 허리 통증이 생겨 부상자 명단에 오른 그는 한창 재활훈련에 열중이었다. 하지만 구위는 기대했던 것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구위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텍사스 구단은 박찬호를 찾지 않은채 마이너리그 재활투구만 연장해서 계속시켰다. 3개월이 넘는 마이너리그 재활투구(빅리그 사상 최다)를 가진끝에 8월 28일에야 부상자 명단에서 빠져나와 간신히 빅리그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거로 탄생하며 특급 선발투수로 잘나가던 LA 다저스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잇단 부상에 따른 구위저화로 마이너리거를 상대해도 압박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구단으로부터 당연히 홀대를 받는 설움도 당해야 했다. 지역 언론은 몸값은 못하는 '먹튀'로 낙인찍으며 연일 비난의 화살을 퍼부은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야구인생이 끝나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거듭하며 남모를 병까지 얻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는 '원형탈모증'이 찾아온 것이다.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은밀히 좋은 약도 구해보고 머리를 길러 감추기도 했지만 고민의 날이 계속되면서 머리를 더 빠졌다. 한마디로 속으로 눈물을 흘린 고난의 시기였다.
그러나 1994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빅리그 데뷔전을 갖는 파란을 일으켰다가 2게임을 치른 후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떨어져 2년여간을 '눈물젖은 빵'을 곱씹은 끝에 '완전한 빅리거'로 재탄생한 박찬호였기에 시련에 굴복하지 않았다. 박찬호는 지난 해 11월까지는 일단 부진의 근원인 허리 치료에 전념했다.
그리고 '허리완쾌판정'을 받고는 12월부터 로스앤젤레스에 개인캠프를 차리고 훈련에만 몰두했다. 매년 비시즌에 귀국해 보통 2개월여를 지내던 한국에서 지난 해에는 한 달여간 조용히 지낸 후 다시 LA로 돌아와 훈련에 돌입할 정도로 비장한 각오를 엿보였다.
겨울내내 투심 패스트볼과 컨트롤을 가다듬으며 제2의 도약을 위한 준비에 전념한 박찬호는 3월 스프링캠프때부터 재기의 가능성을 내비췄다. 신무기인 투심 패스트볼에 익숙해졌고 불안했던 컨트롤도 많이 향상된 모습이었다.
'기필코 재기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재무장한 결과는 올 시즌 들어 성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구위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강속구를 주무기로 하던 '파워피처'에서 변화구와 컨트롤을 위주로 하는 '컨트롤 투수'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다저스 시절 이룬 80승이 땀으로 일궈낸 소득이라면 텍사스에서 거둔 20승은 눈물로 이룬 값진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올 시즌 6승으로 재기에 성공하며 보탠 텍사스의 20승이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링턴=박선양 특파원 s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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