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24)의 성공신화를 보면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떠오른다. 박지성은 수원공고 졸업반이던 1998년 모 프로구단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러나 깡마른 체구에 화려하지 않은 플레이스타일을 지녔던 박지성은 별다른 특성이 없는 선수라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프로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박지성으로서는 일생일대의 복이 됐다. 프로구단 입단에 실패한 박지성은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은사 김희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명지대로 진학했고 이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오늘날 한국축구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김희태 감독은 1999년 3월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맡고 있던 허정무 감독에게 박지성을 추천했고 박지성은‘연습생’의 신분으로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했다. 당시 건국대에 재학 중이던 이영표(PSV 아인트호벤)도 이때 박지성과 함께 ‘연습생’으로 올림픽대표팀에 합류, 스타로 떠오른 케이스다.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한 박지성은 발군의 기량으로 허정무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2000년 1월 호주 전지훈련을 거치며 수비형 미드필더 주전자리를 꿰찼다. 박지성의 기량을 높이 평가한 허정무 감독은 2000년 1월 북중미 골드컵 추전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박지성을 국가대표팀에 합류시켰다. 당시 만 19세의 나이에 철저한 무명이었던 박지성의 발탁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경질된 후 부임한 거스 히딩크 체제 하에서도 박지성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였고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4강 신화의 주인공이 된 후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의 초석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수원공고 졸업 당시 프로입단 테스트에서 불합격한 것이 박지성으로서는 천만다행인 셈이다. 당시 프로구단에 입단했다면 김희태 감독이나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지 못했을 것이고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되는 행운도 없었을 것이다. 허정무 감독이 박지성을 올림픽대표팀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1999년 3월 올림픽대표팀과 명지대의 연습경기를 치른 후로 알려져 있다.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다면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파격이 일어났으리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박지성으로서는 프로구단 입단 테스트에서 물을 먹은 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의 경우도 프로구단 입단 불발이 오늘날의 대성공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박찬호는 공주고 졸업반 당시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할 뻔했으나 한양대로 진학,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이룬 바 있다. 김정민 기자 cjones10@osen.co.kr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