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돔구장이 좋아’대포 7발
OSEN U05000014 기자
발행 2005.07.07 08: 50

“어, 이거 뭐 이래. 공이 안보이네…”. 제 1회 한ㆍ일 프로야구 슈퍼게임이 1차전이 열리기 하루 전날인 지난 1991년 11월 1일.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인 도쿄돔에 들어선 한국 대표 선수들, 특히 야수들은 한동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난생 처음 돔구장을 밟아본 탓에 환경이 너무 낯설었던 것이다. 중견수 노크를 받던 이순철(당시 해태)이“타자의 낙구 지점은 포착하겠으나 볼이 솟구쳐 오른 정점 부근이 안보인다”며 당황해 하자 “왼쪽도 안보여”라며 좌익수 이정훈(빙그레)도 한마디 거들었다. 외야수 뿐만 아니었다. 3루수 한대화(해태)는 “조명이 눈에 너무 잘 들어온다. 이런데서 어떻게 수비를 할지 머리가 아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타석에 서본 선수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돔)바깥보다 공이 빨라 보인다”(김성한)거나 “투수가 던진 공이 높아 보인다”(장종훈)는 등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한국은 결국 이튿날인 2일 도쿄돔에서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로 가져 본 일본 선발팀과의 힘겨루기에서 2-8로 완패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구장 환경에 미처 적응을 못한 것도 한 가지 패인이 됐을 것이다. 다만 한국 대표팀의 주포 김성한이 당시 일본 투수 가운데 가장 빠른 공(158㎞)을 던진다는 이라부(롯데 오리온스)를 상대로 8회에 솔로홈런을 뽑아낸 것이 위안거리였다. 김성한의 홈런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 출신 선수의 도쿄돔 1호 홈런이었다. 한국은 그 후 95년 제 2회 대회 1차전(11월 3일) 때 다시 도쿄돔에 나섰으나 0-0으로 비겼다. 99년 제 3회 대회 때는 마지막 4차전(11월 10일)을 도쿄돔에서 치러 양준혁과 김동주가 홈런 한 발씩 날렸고 일본쪽에서는 마쓰이(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홈런으로 응수한 끝에 8-8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6년 가까이 시간이 더 흐른 지난 4일.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29. 지바롯데 마린스)이 도쿄돔에서 자존심을 곧추세우는 홈런을 날렸다. 그것도 일본야구의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65)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의 광고 간판을 맞히는 150m짜리 초대형 홈런을. 이승엽은 하루 걸러 6일 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 다시 9회 2사 후 극적인 동점 2점홈런을 때려냈다. 도쿄돔은 일본 프로야구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1988년 3월에 개장된 이곳은 ‘빅에그(big egg)’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돔구장이다. 일본야구의 상징적인 곳에서 이승엽이 두 발의 홈런을 기록한 것이다. 이 홈런으로 이승엽은 5월18일부터 22일까지 5게임 연속 홈런을 날린 뒤 도쿄돔에서 가진 요미우리전에서 6게임 연속 홈런에 실패한 빚도 갚은 셈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돔구장 건설이 먼 얘기이지만 일본에는 현재 도쿄를 비롯 나고야(주니치), 도코로자와(세이부), 후쿠오카(소프트뱅크), 오사카(오릭스), 삿포로(니혼햄) 등 모두 6곳에 돔구장이 있다. 이승엽은 지난 4월5일 인보이스 세이부돔구장에서 올 시즌 제 1호 홈런을 날린 것을 신호로 세이부돔 2개, 삿포로돔 1개, 나고야돔 2개, 그리고 도쿄돔 2개 등 21일 현재 19홈런 가운데 7개를 돔구장에서 아치를 그려냈다. 앞으로 오사카와 후쿠오카돔에서 추가하면 전 돔구장 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선동렬이 일본 프로야구 첫 해 혹독한 시련을 겪고난 다음 이듬해 ‘국보투수’의 위용을 되살려냈 듯이 이승엽 역시 작년에 좌절을 맛본 후 올해 드디어 ‘국민타자’의 제모습을 찾고 있다. 이승엽이 일본 완전정복을 외칠 날이 머지않았다. 홍윤표 기자 chuam2@osen.co.kr 6일 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 9회 초 2사 1루에서 극적인 동점 2점홈런을 날린 이승엽이 홈에서 노장투수 하쓰시바의 환영을 받고 있다. /지바 롯데 마린스 홈페이지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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