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26.콜로라도)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고 있던 지난 2001년의 얘기다. 아직 미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던 김병현을 따뜻하게 보살펴준 선수 중 하나가 토드 스토틀마이어(은퇴)였다. 멜 스토틀마이어 양키스 투수코치의 아들인 토드 스토틀마이어는 그 자신 어깨 부상 때문에 은퇴의 기로에 서 있었지만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아 김병현이 여러 번 고마움을 나타낸 바 있다. 그 전 해 필라델피아에서 트레이드돼 온 커트 실링도 스토틀마이어 못지 않게 김병현에게 살갑게 굴었지만 김병현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 표현은 안했지만 실링이 너무 정치적이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김병현과 주전 마무리를 놓고 경쟁하던 맷 맨타이가 팔꿈치 통증 재발로 DL에 오르던 날 실링이 라커룸에 앉아있던 김병현에게 다가왔다. 나중에 김병현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그 때 실링은 김병현에게 "BK(김병현의 애칭),지금이 기회야. 잡아야 돼"라고 속삭였다. 부상을 당한 동료가 아직 짐을 꾸리지도 않았는데 "기회를 잡으라"고 소곤대는 실링의 이기적인 태도에 김병현은 아연했고 그 후론 거리를 두고 실링을 대했다. 이심전심이라고 김병현의 소원한 태도를 실링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고 김병현보다 늦게 보스턴 레드삭스로 옮겨온 실링은 김병현을 '왕따'시키는 데 앞장을 섰다. 김병현이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른다는 비판이 또 다시 나왔다. 콜로라도주 덴버의 한 지역 신문은 13일(한국시간) '김병현이 이기적이어서 팀과 따로 논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이 근거로 댄 것은 김병현이 불펜보다 선발을 선호한다는 것, 비어 있던 자신의 라커룸 옆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준다고 불평했다는 것 정도다. 구원 투수보다 선발을 선호하는 건 모든 투수의 본능에 가까운 소망이다. 또 라커룸에 여유가 있을 때 보통 고참급들 자리 옆을 비워주는 건 메이저리그의 관례다. 208cm 거구의 랜디 존슨은 애리조나 시절 아예 자신의 좌우 라커를 다 비워놓고 활보했다. 빅리그 7년째인 김병현이 메이저리그 전체로 보면 결코 베테랑이 아니지만 신인들 투성이인 콜로라도에선 고참급에 해당할 수 있다. 콜로라도 구단 관계자가 다른 빈 자리들이 있는데도 김병현 옆 자리를 내주려고 해서 김병현이 역정을 낸 건 아닌지 현장을 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같은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김병현은 말수가 적고 조용할 뿐 결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팀 내 실세인 실링의 달콤한 사탕발림을 받아들이지 못했듯 기질상 이기적이기 힘든 사람이다. 하지만 미국인의 눈에 비치는 김병현은 다를 수 있다. 한두 번 정도는 영어를 못해도 보듬어주지만 그 뒤론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혹은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의심하고 백안시하는 나쁜 습성을 가진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 자꾸 미국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김병현의 책임도 분명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병현이 '이기적'이라는 미국 언론의 비판을 보노라면 자꾸 쓴 웃음이 난다. 실링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미국 언론은 얼마나 될까. 김병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국내 팬들은 철저히 미국적인 시각으로 가해지는 김병현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가려서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