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2일(한국시간)은 최희섭(26.LA 다저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초청 선수로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최희섭은 이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시범경기에 6회 대타로 출장, 마크 가드너로부터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150m짜리 초대형 장외홈런을 터뜨렸다. 첫 메이저리그 공식경기 출장에서 대타 홈런을 터뜨린 최희섭은 이후로도 3할대의 좋은 타격을 이어갔지만 유독 한 선수만 만나면 맥을 못 췄다. 동갑내기인 시카고 화이트삭스 신예 왼손 투수 마크 벌리(26)였다. 몸쪽을 파고드는 벌리의 빠른 공과 뚝 떨어지는 커브,체인지업에 최희섭은 두 경기 연속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에서 좌완 투수 상대 타율이 우투수 상대 타율보다 높았을 만큼 왼손 투수에 자신감을 갖고 있던 최희섭에겐 처음 맛보는 좌절이었다. '유망주를 천천히 키운다'는 컵스 구단의 방침에 따라 최희섭은 3월 중순 예정대로 짐을 싸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한 해 전 이미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벌리는 스프링캠프에서 보인 빼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 이후 둘의 길은 뚜렷이 갈렸다. 최희섭이 불의의 손목 부상으로 그해 7,8월로 예정됐던 메이저리그 승격이 좌절된 반면 벌리는 풀시즌을 선발 투수로 뛰면서 16승 8패, 방어율 3.29의 깜짝 활약을 펼쳤고 이듬해인 2002년 19승(12패)을 거두며 일약 팀의 에이스로 부상했다. 2003년 14승으로 주춤하나 했던 벌리는 지난해 16승을 따내며 다시 솟아 올랐고 올 시즌도 전반기 10승 3패, 방어율 2.58로 존 갈랜드와 원투 펀치를 이루며 화이트삭스의 메이저리그 승률 1위 행진을 이끌고 있다. 98년 드래프트 때 38라운드에서나 화이트삭스에 지명을 받을 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벌리는 지난해 3년간 1800만달러의 연봉 대박을 터뜨리며 명실공히 메이저리그 특급 좌완의 반열에 올랐다. 전반기 막판 배리 지토(오클랜드)와 두 차례 선발 맞대결에서 모두 패하며 주춤했던 벌리는 지난 13일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리그 선발로 2이닝을 3K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되며 후반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할5푼대의 피안타율은 썩 인상적이지 않지만 메이저리그 30개팀 투수 중 로이 할러데이(토론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닝(138이닝)을 던진 '강철 어깨'는 메이저리그 최고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벌리가 화이트삭스에서 뿌리를 내리는 동안 컵스-말린스-다저스 세 팀을 떠돈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최저 수준의 연봉에 아직 주전 자리도 확실히 꿰차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좌완인 벌리가 선발 등판한 화이트삭스와 인터리그 경기에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은 올 시즌 최희섭의 현주소와, 한때 비슷한 출발선에서 스타트했던 벌리와의 격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루였다. 하지만 최희섭도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올스타 홈런더비에서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우울했던 전반기의 부진을 날려버렸다. 4년전 최희섭에게 빅리그 좌완의 매운 맛을 처음 보여줬던 벌리와 짐 트레이시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에 발목잡혀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는 최희섭,15일부터 시작될 시즌 후반 두사람은 어떤 희비쌍곡선을 그릴까.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