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시절 박찬호는 같은 지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타자들에게 유독 시달림을 당했다. 그러나 2001년을 전후로 이같은 '천적 관계'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빠른 커브를 주무기로 장착하면서부터다. 왼쪽 타자의 몸쪽에 바짝 붙어 체인지업처럼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빠른 커브에 애리조나 좌타자들은 무력하게 헛스윙을 해댔다. 다저스전에 앞서 당시 애리조나 소속이던 김병현과 인터뷰를 위해 들린 라커룸에서 루이스 곤살레스,스티브 핀리 등 좌타자들이 "(박)찬호의 커브를 어떻게 쳐야 하냐"고 수군대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올 시즌 박찬호 재기의 첫 번째 키워드는 투심 패스트볼이다. 하지만 포심 패스트볼이 전만큼 위력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투심 하나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하긴 힘들다. 또 종횡으로 변하는 슬러브는 유인구로 효과적이지만 좌타자를 상대로 결정구로 쓰기는 힘들다. 때맞춰 되살아난 빠른 커브(혹은 파워 커브)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20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전에서 박찬호는 투심과 함께 왼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커브를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탈삼진 5개가 모두 좌타자를 상대로 뽑아낸 것이고 그중 3구 삼진이 4차례나 됐는데 그 비결은 커브였다. 2회 마쓰이 히데키의 배트를 헛돌게 한 결정구가 바깥쪽 커브였고 다음 타자 호르헤 포사다를 상대로는 커브 두 개를 연달아 던져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투심 패스트볼로 허를 찔러 3구 삼진을 잡아냈다. 3회 버니 윌리엄스에게 뚝 떨어지는 '12시-6시 커브'를 몸쪽으로 바짝 붙여 헛스윙을 이끌어낸 장면은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다. 6회 역시 좌타자인 로빈슨 카노에게 커브를 던지다 가운데로 몰려 2루타를 맞는 등 박찬호의 빠른 커브가 다저스 시절같은 빠르기와 위력을 완전히 되찾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전반기 막판인 지난 7일 보스턴전과 후반기 첫 등판인 15일 오클랜드전 등 최근 등판에서 박찬호는 좌타자를 상대할 때 빠른 커브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려고 애쓰고 있다. 커브에 대해 잃었던 감과 자신감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빠른 커브는 투심을 레퍼터리로 추가하기 훨씬 전 박찬호가 자신있게 쓰던 무기였다. 잃었던 주무기를 재장착한다면 좌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투심과 몸쪽으로 꺾이는 슬러브, 포심패스트볼과 느린 커브 등 기존의 구질까지 합쳐 훨씬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 투수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특히 스플릿핑거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는 박찬호로선 빠르게 떨어지는 파워 커브의 부활은 후반기를 헤쳐나가는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