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로드'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다. 93년 6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시애틀에 지명된 로드리게스는 매리너스에서 7년을 뛰다 2001년초 10년간 2억5200만달러라는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대박을 터뜨리며 텍사스로 옮겼고 지난해 알폰소 소리아노와 맞트레이드돼 지금의 팀 뉴욕 양키스로 왔다.
로드리게스가 시애틀을 떠나기 전인 1999년 여름 매리너스엔 큰 변화가 있었다. 1977년부터 써오던 킹돔에서 전반기를 마친 뒤 후반기부터 새 홈구장 세이프코필드로 '이사'를 한 것이다. 제트 기류가 흘러 홈런이 잘 나던 킹돔과 달리 세이프코필드는 좌우중간 펜스까지 거리가 멀어 홈런을 치기 힘든 것으로 드러났다. 98년 메이저리그 사상 3번째로 40홈런-40도루를 달성하며 장타준족을 마음껏 과시했던 로드리게스는 구단에 "펜스를 앞당겨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장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역시 홈런이 나지 않는 세이프코필드를 마뜩치 않아하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2000년 시애틀을 떠난 데 이어 로드리게스도 FA가 된 이듬해 겨울 텍사스로 둥지를 옮겼다(로드리게스는 세이프코필드에서 절반을 뛴 99년과 2000년까지 3년 연속 40홈런을 넘기긴 했다). 두 간판타자를 잃은 시애틀은 2001년 넓은 새 홈구장에 맞는 '소총수' 이치로를 영입했고 그 결과는 지난해까지 대성공으로 드러났다.
이치로와 세이프코필드가 '찰떡 궁합'이라면 구장과 선수가 궁합이 맞지 않아 선수도 팀도 함께 불행해진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후안 곤살레스(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코메리카파크다. 1912년부터 타이거 스타디움을 써오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2000년 코메리카파크 개장에 맞춰 관중들을 불러모을 만큼 화려한 팀 전력을 갖추길 원했고 그 첫 번째 카드로 텍사스 레인저스의 강타자 곤살레스를 트레이드해 왔다.
그러나 좌중간 펜스까지 거리가 120m나 되던 코메리카파크와 한 방 노리는 스타일의 우타자 곤살레스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아무리 쳐도 홈런이 나오지 않자 곤살레스는 좌절했고 홈관중들은 그런 곤살레스에게 야유를 보냈다. 팀 성적은 추락했고 빚을 들여 지은 코메리카파크 관중석은 텅텅 비는 최악의 악순환이 빚어졌다.
두 차례나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던 곤살레스는 고작 홈런 22개에 그쳤고 그해 겨울 FA가 되자 클리블랜드로 '탈출'했다. 디트로이트는 결국 펜스를 크게 앞당겼지만 때늦은 뒤였고 '잘못된 만남'은 이후로도 몇 년간 타이거스를 옥죄는 사슬이 됐다.
베이브 루스와 테드 윌리엄스라는 두 위대한 좌타자를 보유했던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의 오른쪽 펜스 거리가 왼쪽보다 훨씬 짧거나(양키스타디움) 담장 높이가 터무니없이 낮은 것(펜웨이파크)은 팀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의 산물이다. 지난 30일(한국시간) 박찬호와 필 네빈의 트레이드를 전격 단행한 텍사스 샌디에이고 두 구단과 이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들의 시각도 궁합에 맞춰지고 있다.
텍사스는 샌디에이고 시절 규모가 큰 펫코파크로 홈 구장을 옮긴 뒤 간판타자의 위용을 잃은 네빈이 타자 친화적인 아메리퀘스트필드로 와서 30홈런-100타점 타자로 부활하길 기대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역시 아메리퀘스트필드에서 고전했던 박찬호가 펜스 거리는 멀지 않지만(좌측 102m, 좌중간 112m, 중앙 121m, 우중간 118m, 우측 98m) 투수친화적인 펫코파크에서 LA 다저스 시절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 믿고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샌디에이고 지역 신문인 은 "플라이볼 투수(최근엔 땅볼 투수로 많이 바뀌었지만)인 박찬호가 좀 더 큰 구장에서 잘해줄 것으로 믿는다"는 그래디 퓨슨 샌디에이고 단장 특별보좌역의 말을 소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찬호의 의지와 노력이지만 좀더 좋은 환경에서 새 마음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건 박찬호에게 분명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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