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28)가 지난 1998년 미국 진출 후 가장 따랐던 지도자는 보스턴과 휴스턴 사령탑을 지낸 지미 윌리엄스 전 감독이다.
"언젠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던 날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던 기억이 난다. 야구 책을 선물하면서 '매덕스도 신인 때는 고전했다'고 격려해주신 적도 있다"는 김선우는 "말보다는 마음으로 날 아껴줬던 분"으로 윌리엄스 감독을 기억한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김선우는 윌리엄스 감독의 사랑을 받았지만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한 번도 제대로 빛나지 못했다. 마이너리그를 밥먹듯 오가던 김선우는 윌리엄스 감독이 해임된 뒤 1년만인 2002년 7월 결국 클리프 플로이드와 트레이드돼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로 옮겼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다혈질이고 직선적인 프랭크 로빈슨 감독을 만난 뒤 겪은 고초는 잘 알려진 대로다.
청소년대표 시절 밟아 본 펜웨이파크 마운드 흙을 떠담은 유리병을 고이 간직했을 만큼 모든 것을 바쳤던 보스턴에서 보낸 4년간 김선우가 꽃을 피우지 못한 데는 팀의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 라이벌 뉴욕 양키스를 넘지 못하고 '밤비노의 저주'를 풀지 못하던 보스턴은 매 시즌, 매 경기가 월드시리즈인양 필사적이었고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김선우에게 무턱대고 기회를 줄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차라리 김선우가 보스턴이 아닌 몬트리올에 처음 입단했다면 김선우의 현주소는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
윌리엄스 감독의 따뜻한 배려에도 보스턴의 척박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김선우는 몬트리올에서 '호랑이' 로빈슨 감독을 만나 더 큰 시련과 맞닥뜨렸다. 부진한 경기에선 "김선우의 투구는 메이저리거의 피칭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이너로 가는 것보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막말을 퍼부었고 모처럼 호투한 경기에선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몇 개 남겨둔 상황에서 공을 뺏어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로빈슨 감독이 김선우뿐 아니라 오카, 자크 데이 등 다른 투수들에게도 무자비하게 굴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였을 뿐이다.
로빈슨의 휘하를 떠나 콜로라도 로키스로 온 김선우는 이적 후 첫 등판인 9일(한국시간)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4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2-2 동점인 4회 대타로 교체되고 말았다. 쿠어스필드 첫 등판인데도 썩 잘 던지고 있었지만 클린트 허들 감독은 5회부터 불펜을 가동하며 김선우를 앞으론 선발보다 불펜으로 기용할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두 번이나 팀을 옮기고도 아직 김선우의 시련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보스턴에선 팀과, 워싱턴에선 감독과 궁합이 맞지 않아 고전했던 김선우는 최약체 타선에 홈구장은 투수들에게 최악인 콜로라도에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하기 위한 또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구장 탓 감독 탓은 실력이 모자라는 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올해로 미국 진출 8년째를 맞는 김선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코리언 빅리거들 중에서도 유독 지독한 시련을 겪어온 김선우가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에서 활짝 성공의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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