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천적은 있다. 김병현(26.콜로라도)에게도 피해가고 싶은 천적들이 몇 명 있다. 김병현만 만나면 프리배팅하듯 방망이를 돌리는 숀 그린(애리조나)이나 결정적인 순간 치명적인 홈런을 안긴 라이언 클레스코(샌디에이고)가 대표적이다.
프레스턴 윌슨(31.워싱턴)과 먹이사슬은 참 묘하다. 지금은 참을성이 많이 늘었지만 빅리그 초년병 시절 윌슨은 대책 없는 '헛스윙 왕'이었다. 윌슨은 플로리다 소속이던 지난 2000년엔 삼진 187개로 배리 본즈의 아버지 바비 본즈가 가지고 있던 당시 한 시즌 최다 삼진 기록(189개)을 아슬아슬하게 밑돌기도 했다(2002년 호세 에르난데스가 188개로 윌슨을 앞지르더니 지난해 애덤 던은 195개로 본즈의 기록까지 경신했다).
그러나 윌슨은 당시 '불펜 삼진왕'으로 명성을 날리던 애리조나 김병현을 만나면 좀처럼 헛손질을 하지 않았다. 삼진을 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번번히 안타를 치고나가 김병현을 괴롭혔다. 김병현 상대 통산 성적이 11타수 8안타 3볼넷으로 기록만 보면 그린이나 클레스코를 능가한다. 오른손잡이 중에선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의 공을 가장 잘 치는 타자가 윌슨이다.
윌슨의 워싱턴 이적 직후 첫 만남인 지난달 19일(한국시간) RFK스타디움 원정경기에서도 다시 한 번 천적관계가 입증됐다. 김병현은 6이닝 7피안타 2실점 호투로 팀 승리의 발판을 놓았지만 2점이 1회 윌슨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아 내준 점수였다. 내야를 살짝 넘기는 빗맞은 타구였지만 중견수와 2루수가 함께 달려들다 둘다 놓치는 바람에 2루가 비어 윌슨이 2루까지 내달렸다. 첫 출발이 꼬인 김병현은 이어 단타와 볼넷까지 3타석 내리 윌슨을 출루시켰다.
김병현이 14일(한국시간) 쿠어스필드에서 벌어질 워싱턴 내셔널스와 홈경기에서 시즌 4승을 따내려면 다른 어떤 타자보다 윌슨부터 꺾어야한다. 지난 9일 플로리다전 승리에 이어 연승에 도전하는 김병현에게 성취 동기는 충분하다. 지난 12일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피츠버그전에서 콜로라도 선발 제프 프랜시스는 1회에만 6실점하는 등 13안타의 뭇매를 맞고 4회 강판했다. 구스타포 차신(토론토)과 함께 올 시즌 메이저리그 신인 투수 중 최다승(11승)을 기록 중인 프랜시스는 이날 경기로 쿠어스필드 홈 방어율이 3.59에서 4.44로 치솟았다.
프랜시스가 난타당함으로써 김병현은 콜로라도 선발 투수 중 홈 방어율이 가장 좋은 선수가 됐다. 김병현이 올 시즌 16차례 쿠어스필드 등판(선발 8경기)에서 기록한 4.08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숀 차콘, 오클랜드로 간 조 케네디를 포함 올 시즌 로키스에서 한 차례 이상 선발로 던진 모든 투수를 통틀어 가장 좋은 방어율이다.
애리조나와 보스턴 시절부터 김병현은 "잘 던지고도 승리 못따고 엉망으로 경기를 망치고도 승리 투수가 되는 게 야구 아니냐. 승리나 세이브보다는 방어율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남은 시즌 선발 승수를 보태는 것만큼 김병현에게 중요한 것도 방어율을 낮추는 것이다. 현재 방어율 5.05를 기록 중인 김병현은 단 한번의 호투로 시즌 방어율을 4점대, 쿠어스필드 방어율을 3점대로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러려면 이번엔 프레스턴 윌슨을 넘어야 한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