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됐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정글'과도 같은 빅리그에서는 실력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정답이 없다.
올 시즌은 주전 1루수로서 화려하게 출발했던 '빅초이' 최희섭(26.LA 다저스)이 이제는 '후보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애틀랜타전서 6게임만에 선발 1루수로 출장해 특급 투수인 존 스몰츠를 상대로 안타를 때리는 등 2안타를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다음날(18일)은 물론 19일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짐 트레이시 다저스 감독은 시즌 초반에는 주로 좌투수가 나올 때에만 좌타자인 최희섭 대신 우타자인 올메도 사엔스(35)를 기용하는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했으나 7월 올스타전 이후에는 우투수가 나와도 최희섭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대신 주로 사엔스를 기용하거나 때로는 2루수 제프 켄트, 포수 제이슨 필립스를 선발 1루수로 출전시키고 있다.
최희섭으로선 선발 출장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다. 폴 디포디스타 단장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주전 1루수로 출발했던 최희섭으로선 억울한 일이지만 그 동안 득점찬스에서 적시타를 잘 때려내지 못한 탓에 감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희섭이 다시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길은 간단하다. 대타로라도 출장기회가 왔을때 화끈한 공격을 펼쳐보임으로써 '해결사' 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마치 최희섭에게 밀려 후보신세였다가 출장기회가 왔을 때 한 방을 터트려 이제는 주전 1루수로서 명함을 내밀고 있는 '사엔스'처럼 하는 것이다.
사엔스는 지난 17일 최희섭이 2안타를 때려내며 분전했던 애틀랜타전서 9회 대타로 출장해 2타점 결승타를 날리는 등 득점찬스에서 강한 집중력을 보이며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엔스는 80게임서 230타수 67안타(타율 2할9푼1리) 12홈런 53타점을 기록, 시즌 초반 출장수가 많았던 최희섭을 능가하는 호성적을 내고 있다. 최희섭은 104게임서 262타수 66안타(2할5푼2리) 14홈런 36타점으로 홈런만 사엔스보다 2개가 많을 뿐 나머지에선 밀리는 형국이다.
사엔스는 199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잠깐 뛰다가 긴 공백기를 거쳐 99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본격적인 빅리거로 활동하기 시작해 지난 해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그저그런 평범한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 해 다저스에서 주로 대타로 출장해서 '녹록치 않은 방망이 솜씨'(2할7푼9리, 8홈런)를 과시하면서 트레이시 감독의 눈길을 모았다. 사엔스는 오랜 기간 후보로 벤치를 지키면서 대타로 출장했을 때 집중력 있는 타격을 펼치는 노하우를 익힌 덕분인지 올 시즌 뒤늦게 기량을 꽃피우고 있다.
최희섭으로선 사엔스의 '희생양'이 된 것은 억울한 일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사엔스의 대타출장 때 집중력 있는 타격 솜씨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다행히 최희섭은 최근 들어선 대타 출장시에도 심심치 않게 안타와 출루를 기록하며 집중력을 찾아가고 있어 머지않아 방망이가 폭발할 것도 기대할만하다. 최희섭은 최근 대타로 13타석에 나서 5안타를 때려 타율 3할8푼5리를 기록, 시즌 초반과는 많이 달라진 면을 보이고 있다.
최희섭이 빅리그 데뷔 7년만에 빛을 보고 있는 사엔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득점찬스서 순도 높은 한 방을 터트리며 주전 자리를 되찾기를 기대해본다.
알링턴=박선양 특파원 s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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