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리거 '시즌 30승' 시대, 르네상스인가 위기인가
OSEN U05000293 기자
발행 2005.09.05 11: 12

1994년 박찬호의 LA 다저스 입단으로 시작된 한국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시즌 막판 박찬호와 서재응 김병현 김선우의 V릴레이가 이어지면서 처음으로 한국인 투수들이 시즌 합작 30승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성큼 다가온 30승 고지
5일(한국시간) 서재응이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시즌 7승째를 따냄에 따라 올 시즌 한국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승리는 28승이 됐다. 맏형 박찬호가 12승(6패)으로 그 중 절반 가까이를 해냈고 서재응이 7승(1패) 김병현이 5승(10패) 김선우가 4승(2패)을 따냈다. 각각 6연승(서재응) 3연승(박찬호 김선우) 2연승(김병현)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4명은 최근 11차례 릴레이 등판에서 1패도 없이 9승을 쓸어담고 있어 합작 30승을 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한국 투수들이 한 시즌에 30승을 따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은 박찬호가 시즌 최다승(18승)을 달성했던 지난 2000년 김병현이 6구원승을 보태 처음 합작 시즌 20승을 넘어선 뒤 2003년엔 25승으로 이를 다시 1승 넘어섰다. 박찬호는 허리 부상으로 단 1승만 남기고 시즌을 마감했지만 서재응이 9승, 봉중근이 중간계투로 6승을 따내는 깜짝 활약을 펼쳐 김병현(9승)과 함께 25승을 채웠다.
▲처음으로 일본을 넘다
1990년대 중반 일본과 나란히 메이저리그 개척에 나선 한국은 올 시즌 처음으로 시즌 승수에서 일본을 앞지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 1964~65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잠깐 뛰며 5승을 거둔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최초의 메이저리거지만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진출은 1995년 다저스에 입단한 노모 히데오부터로 한국보다 한발이 늦었다. 하지만 노모가 입단 첫 해 13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등극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시즌 승수에서 한국을 앞서며 저력을 보여왔다.
노모에 요시이 마사토와 이라부 히데키가 가세한 1998년(합작 34승)과 1999년(43승) 차례로 30승, 40승 고지를 넘은 일본은 2002년엔 한 해동안 7명의 투수들이 62승을 따내며 최정점을 이뤘다. 부활한 노모(16승)를 필두로 이시이 가즈히사(14승) 오카 도모카즈(13승) 하세가와 시게토시(8승) 등이 뒤를 받친 결과였다.
2003년과 지난해에도 30승대를 유지하던 일본은 그러나 올 시즌 최악의 흉년에 빠졌다. 노모가 메이저리그에서 밀려나고 이시이도 로테이션에서 탈락하면서 오카가 유일한 선발 투수로 남아 명맥마저 위협받고 있다. 올 시즌 일본인 투수 7명이 따낸 승수는 24승으로 선발 승수만 보면 노모 혼자 분투하던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투수, 그 중에서도 선발 요원 일변도인 한국과 달리 선발보다 구원 투수쪽이 주종을 이루고 마쓰이 히데키와 이치로, 이구치 다다히토 등 타자들로 메이저리그 공략을 다변화한 결과다.
▲르네상스인가, 쇠락의 전조인가
서재응의 기적같은 연승 행진과 박찬호의 부활, 김병현-김선우의 '쌍끌이'행진까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최근 대활약은 전혀 예상 못한 일들이다. 미국 현지에서 이들을 취재하는 한국 특파원들과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이 올 시즌을 앞두고 내놓은 전망은 대단히 비관적이었다. 타자인 최희섭을 포함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올해를 고비로 일제히 퇴조해 조만간 한국인 메이저리그 진출사에 '암흑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비관적 전망을 뒤집고 연일 승전보를 전해오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눈부신 V릴레이는 한국인 메이저리그 도전사에 르네상스를 열까.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진출의 명맥 자체가 끊긴 상태다. 1994년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를 포함 최근 승승장구하고 있는 4명의 투수들은 모두 90년대 중후반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그 승격을 노리고 있는 선수들도 봉중근 백차승 송승준은 90년대 진출자들이고 추신수가 유일하게 21세기에 미국 땅을 밟은 선수다.
하지만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추신수도 올해가 미국 진출 6년째로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미국으로 간 구대성을 논외로 하면 벌써 5년 넘게 그 뒤를 이을 코리안 메이저리거 예비군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진출 후 최소한 2,3년은 마이너리그에서 시험 과정을 거쳐야하는 만큼 앞으로 5,6년 뒤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이 거의 사라지는 공백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90년대 한국 프로야구의 붕괴를 우려할 만큼 대단했던 미국행 러시는 왜 자취없이 사그라들었을까. 원인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한국에서 데려 올 선수가 없다"고 말한다. 씨알 굵은 아마 선수들은 국내 잔류를 택하고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 프로 선수 중엔 메이저리그에서 뛸 만큼 실력있는 자가 없다는 뜻이다.
몇 해 전 만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한 스카우트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이 탐낼 만한 선수는 단 한 명뿐이다. 구대성이다"고 잘라 말했다. 이승엽과 심정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키워가던 무렵이었다. 그 스카우트의 예언(?)대로 이승엽과 심정수는 결국 일본행과 국내 잔류를 택했고 메이저리그는 뜻대로 구대성을 데려갔을 뿐이다.
▲구대성 딜레머, 그리고 최희섭
그런 구대성도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다. 이승엽이 아직 꿈을 접지 않고 있지만 이상훈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간 두 번째 사례인 구대성마저 사실상 실패함에 따라 메이저리그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에겐 난공불락의 성으로 높아져만 가고 있다. 노모 사사키 이치로 마쓰이 이구치 등 자국 리그 출신들이 메이저리그서도 명성을 떨친 일본과는 극과 극이다.
메이저리그도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 베테랑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엄연한 기회의 장이라는 점에서 이상훈과 구대성이 넘지 못한 벽을 뛰어넘을 선수를 만들어내는 건 한국 프로야구의 또다른 과제일지 모른다. 아울러 최초의 타자 메이저리거 최희섭의 성공 여부도 한국 야구사에 오래 남을 중요한 실험이다.
유망주 자원이 한정된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상 무차별적인 메이저리그 진출 러시가 진정된 건 다행스런 일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쓴맛을 본 선수들이 속속 짐을 싸 국내로 돌아오면서 바닥을 헤매던 한국 프로야구가 기력을 되찾아가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러나 국내 야구팬들에게 메이저리그는 제2의 '자국리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들이 보고싶어 하는 건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수준 높은 플레이와 함께 그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이다.
박찬호-서재응-김병현-김선우의 V릴레이는 국내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지만 제2, 제3의 박찬호 김병현이 앞으로도 한동안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아쉬운 현실이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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