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K 등 가을 잔치에 나갈 팀들에게 온통 시선이 쏠린 요즘 기아 이종범(35)은 난생 첫 꼴찌의 씁쓸함을 곱씹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독기가 잔뜩 묻은 방망이를 마지막까지 매섭게 휘두르고 있다. 지난 23일 광주경기에서 기아는 롯데 선발 주형광에게 7회까지 무안타로 끌려갔다. 주형광의 재기 성공엔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기아 타선의 무력함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8회에도 손지환과 김종국이 내야 플라이와 땅볼로 물러나 노히트노런의 수모에 아웃카운트 4개를 남겨두고 타석에 대타로 이종범이 들어섰다. 초구를 헛스윙한 뒤 3구째 다시 파울을 내 볼카운트 2-1에 몰린 이종범은 주형광의 4구째를 밀어쳐 기어코 안타를 만들어냈다. 우중간 담장에 맞는 2루타로 노히트노런을 깬 이종범은 대타 김상훈의 적시타로 홈을 밟아 주형광의 완봉승마저 깨뜨렸다. 이종범이 물방망이 기아 타선을 수렁에서 건져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26일 역시 광주경기에서 롯데 선발 장원준에게 무안타로 끌려가던 9회 1사에서 1루 강습 내야안타로 노히트노런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냈다. 이어 지난 20일 SK전에선 연장 10회말 채병룡을 상대로 끝내기 솔로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 SK가 이겼다면 삼성-SK의 선두 다툼이 치열해졌을 프로야구 막판 판세가 이 한 방으로 SK-두산의 2위 싸움으로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올 겨울 FA를 앞두고 있는 기아 최고참 이종범은 올 시즌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냈다. 홈런은 6개로 1993년 데뷔 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지만 타율 3할1푼2리로 2003년 이후 2년만에 3할 타자에 복귀했고 도루도 27개를 성공시키며 발도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후반기 들어 두 번이나 경기 막판 노히트노런을 깨는 안타를 날렸다는건 이종범의 체력에 문제가 없고 정신력도 날카롭게 날서있다는 증거다. 기아가 해태 시절 포함 팀 창단 후 24년만에 첫 꼴찌로 추락했지만 이종범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탈꼴찌의 희망이 살아있던 이달초 이종범은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겪는다"며 "남은 시즌 최선을 다해서 꼴찌는 면해야겠지만 후배들이 뭔가 좀 느껴야할 것"이라고 의미 깊은 말을 던졌다. 올 시즌이 끝나고도 기아 유니폼을 입게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종범은 마지막 순간까지 방망이로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