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레라스, 못다 핀 '아메리칸 드림' 이루려나
OSEN U05000176 기자
발행 2005.10.05 11: 38

지난 2002년 12월. 뉴욕 양키스는 두 달 전 망명한 쿠바 출신 우완 호세 콘트레라스와 4년간 3200만달러에 입단 계약을 발표했다. 콘트레라스를 영입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양키스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래리 루치노 사장은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악의 제국이 마수를 라틴 아메리카까지 뻗쳤다"며 양키스를 비난했다.
담배 농장 노동자의 아들. 아마 최강인 쿠바 야구 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10여 년간 대표팀을 이끌며 피델 카스트로의 총애를 받던 영원한 에이스. 콘트레라스(34)는 그러나 2002년 10월 멕시코에서 열린 라틴 아메리칸 시리즈 도중 홀연 팀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숱한 대표팀 동료들이 뗏목에 몸을 실고 모터 보트를 타고 쿠바를 탈출해도 "상품처럼 팔려다니는 곳(메이저리그)은 싫다"며 꿋꿋했던 그의 생각이 바뀐 건 그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쿠바 대표팀간 교환경기차 볼티모어 홈구장 캠든야드를 밟은 뒤로 콘트레라스의 마음 속에 메이저리그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콘트레라스는 당시 쿠바 아바나에서 열렸던 볼티모어와 첫 경기에서 2회 구원 등판, 시속 98마일(158km)의 광속구를 뿌리며 8이닝을 2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3년 전을 또렷이 기억하던 메이저리그 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콘트레라스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양키스가 그를 낚아채면서 '악의 제국'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양키스에서의 선수생활은 그러나 짧고 불운했다. 지난해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을 불과 몇분 앞두고 양키스는 콘트레라스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했다. 콘트레라스에 현금 300만달러를 얹어주고 에스테반 로아이사를 받는 조건이었다.
줄무니 유니폼을 입고 던진 한 시즌 반동안 15승 7패, 방어율 4.64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콘트레라스는 특히 라이벌 보스턴전에서 형편없이 부진했던 게 치명적이었다. "이리저리 팔려다는 건 싫다"며 트레이드 거부권을 보장받았던 콘트라레스는 메이저리그의 비정함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마지막 순간 거부권을 거둬들였다.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단장에 오른 켄 윌리엄스 화이트삭스 단장은 흑인 혈통인 콘트레라스를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존 갤런드, 마크 벌리 등 젊은 투수들이 대부분인 팀 마운드에 콘트레라스가 '맏형' 노릇을 해줄 적임자라는 게 윌리엄스 단장의 생각이었다. 콘트레라스는 지난해 후반기 5승 4패, 방어율 5.30에 그쳤지만 올 시즌 15승 7패, 방어율 3.61로 기대에 부응했다.
콘트레라스는 특히 시즌 전반 돌풍을 주도하던 갤런드-벌리 듀오가 급격하게 내리막을 탄 후반기 들어 더 뛰어난 피칭으로 팀의 추락을 막아냈다. 특히 8월말부터 8경기 연속 승리로 페넌트레이스를 마감, 화이트삭스가 클리블랜드의 매서운 추격을 뿌리치고 지구 선두를 지키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5일(한국시간)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콘트레라스는 8회 2사까지 산발 8피안타 무사사구 6탈삼진 2실점의 빼어난 피칭으로 화이트삭스에 1959년 월드시리즈 1차전 이후 무려 46년만에 포스트시즌 홈 경기 첫 승을 선사했다. 상대는 그토록 자신을 얻고자 했던, 하지만 양키스 한 팀에서 오래도록 뛰고 싶었던 자신의 희망을 부숴버렸던 보스턴이었다.
트레이드와 천문학적인 액수의 FA 계약을 통해 빠르게 돌고 도는 메이저리그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던 '라틴 에이스' 콘트라레스가 이번 포스트시즌을 통해 상처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화이트삭스가 보스턴을 꺾고 리그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를 만난다면 더욱 흥미진진하게 됐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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