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심한 부진이었다. 롯데 마린스 이승엽(29)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소프트뱅크-후쿠오카 야후돔-몸쪽 볼이라는 3가지 징크스를 깨는 데 실패했다.
이승엽은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유독 소프트뱅크에 약한 면을 보였다. 상대 타율이 1할5푼4리(65타수 10안타)로 퍼시픽리그 5개 구단 중 최저였다. 그 다음으로 좋지 않은 세이부전 타율이 2할4푼3리이니 소프트뱅크전에서 얼마나 부진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소프트뱅크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야후돔의 성적도 나쁘다. 34타수 6안타로 1할7푼6리에 머물렀다. 더욱 야후돔에서는 작년부터 한 개의 홈런도 날리지 못한 징크스도 갖고 있다.
이승엽이 이렇게 부진한 이유는 소프트뱅크 투수들의 과감한 몸쪽 승부에서 비롯된 것이 크다. 한국시절부터 몸쪽으로 바짝 붙는 볼에 약점을 드러냈던 이승엽을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특히 올 시즌은 다른 팀 투수들이 장타를 의식해 함부로 몸쪽으로 승부를 걸지 못했지만 소프트뱅크만은 예외였다. 컨트롤에 자신이 있는 좋은 투수들이 많은 만큼 큰 것 한방을 의식하지 않고도 이런 승부가 가능했다.
이승엽이 선발 출장한 13일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도 양상은 페넌트레이스와 똑같았다. 올 시즌 16승 1패를 거뒀던 선발 사이토는 3번의 맞대결에서 몸쪽 볼을 무려 10개나 던졌다. 전체 투구수 15개 중 바깥으로 간 것은 2개뿐이었다. 그것도 6회 세 번째 타석에서야 바깥쪽으로 볼을 보냈다. 2회와 5회 타석에서는 단 2개의 볼만이 가운데로 들어왔을 뿐 9개가 몸쪽이었다.
주전 포수 조지마가 부상으로 결장, 마토바가 대신 마스크를 썼지만 이승엽을 상대하는 패턴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거기다 사이토는 이승엽과 정규시즌 4번째 경기(9월 19일)에서 몸쪽 직구를 던지다 홈런을 허용했으면서도 오히려 칠 테면 쳐 보라는 식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승엽은 몸쪽 볼을 의식한 나머지 유인구에 속는 안타까운 모습까지 보였다. 4타석 모두 투 스트라이크 이후 마지막 삼진을 당한 볼들은 놔두었으면 볼이 선언됐을 것들이었다. 특히 첫 타석에서 몸쪽 높은 직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후 5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똑 같은 코스의 볼에 또 다시 배트가 나가 사이토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말았다. 사이토는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바깥쪽으로 볼을 2개 보낸 후 몸쪽에 하나를 붙여 볼카운트 2-1로 만들더니 가운데 낮게 떨어지는 포크 볼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앞선 두 타석의 삼진이 부담이 됐던 터라 배트가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4번째 삼진을 잡아낸 소프트뱅크 마무리 투수 마하라 역시 몸쪽 볼 3개로 볼카운트 2-1을 만든 다음 가운데 높은 곳으로 들어가는 149km짜리 빠른 볼로 헛스윙을 만들어 냈다.
큰 경기 일수록 상대팀은 장타력을 갖춘 선수를 심하게 견제하기 마련이다. 승부의 흐름이 한 순간에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거기다 상대팀에게 부진했던 부담도 안고 있다. 이번 챔피언시리즈가 가시밭길로 예상되는 이유다. 하지만 그럴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볼카운트 1-1에서 몸쪽으로 붙는 슬라이더, 가운데 높은 직구에 연속 배트가 나갔던 9회 마지막 타석에서 처럼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상대의 수를 생각하는 타격이 필요할 것 같다.
2002년 삼성이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할 때 이승엽은 시리즈 내내 부진하다 3승 2패로 앞선 6차전 9회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으로 팀의 20년 숙원을 풀어주었다. 기다린다면 징크스를 깰 기회도 온다.
박승현 기자 nang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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