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대-삼성의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은 양팀 득점 없던 6회 선발 김진웅이 1사후 몸에 맞는 공을 내주자 김진웅을 내리고 권오준을 투입했다. 권오준이 남은 3⅔이닝을 단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9회말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으로 1-0 승리를 거뒀다. 포스트시즌 통산 6번째이자 한국시리즈로는 사상 첫 1-0 경기였다.
꼬박 1년이 흘러 지난 18일 한국시리즈 3차전. 삼성이 6-0 대승을 거두며 3연승을 달렸지만 1-0이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삼성은 2회초 볼넷과 도루, 두산 선발 박명환의 폭투로 안타 없이 낸 1-0의 살얼음판 리드를 7회까지 지켜냈다. 바르가스의 5이닝 무실점 호투에 이어 오상민과 권오준 전병호 안지만 박석진 등 5명의 불펜요원이 4이닝을 4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8회 터진 양준혁의 3점 홈런, 진갑용의 투런 아치는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특히 6회 1사 3루에서 등판, 삼진 두개로 불을 끈 권오준의 역투는 백미였다. 1~3차전 세 경기 연속 마운드에 오른 권오준과 1, 2차전 1구원승 1세이브의 오승환 등 'K(권오준) O(오승환) 펀치'를 앞세운 삼성 불펜은 3차전까지 13⅓이닝의 강행군 속에서도 단 1실점으로 막아냈다. 9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무릎을 꿇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싹을 보인 '강한 불펜'의 힘이 올 해 정상 재도전에서 활짝 만개한 느낌이다.
한국시리즈 3연승을 만들어낸 삼성의 강한 불펜은 선동렬 감독의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새내기 오승환을 최강 마무리로 길러낸 것도 그렇지만 수석코치와 감독으로 팀을 이끈 2년간 불펜 요원들을 몰라보게 강하게 만들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까지 구원 등판한 권오준 안지만 오상민 전병호 박석진 5명의 2003년 평균자책점(방어율)은 4.47이었다. 선동렬 감독이 수석코치로 투수들을 총괄한 지난해 5명의 평균자책점은 3.45로 낮아졌다. 올 시즌엔 3.56으로 약간 높아졌지만 방어율 1점대(1.18)의 오승환이 가세하면서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됐다.
대단한 삼성 불펜과 한국시리즈에서 맞선 두산의 계투진은 초라하기만 하다. 1차전 연속 안타를 맞고 추가 실점한 이재우와 2차전 9회말에 김대익에게 동점 홈런을 맞고 승리를 날린 정재훈과 끝내기 안타를 맞은 이재영, 3차전 양준혁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고 또다시 무너진 이재우까지 두산과 삼성의 불펜은 세 경기에서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무기력한 타선과 함께 힘없이 무너진 불펜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력은 의외로 짧다. 두산 불펜도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멀리 갈 것 없이 한화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김명제에 이어 4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포스트시즌 사상 7번째 1-0 승리를 만들어낸 두산 불펜이다.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을 합작한 두산 불펜은 3경기에서 23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볼넷을 한 개도 주지 않아 안정된 제구력과 함께 젊은 투수들답지 않은 대담함을 인정받았다. 상대가 지친 한화였다고 폄하할 일만은 아니다.
한국시리즈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아쉽지만 두산 불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병풍 파동으로 송두리째 날아갈 뻔한 마운드를 짜깁고 젊은 투수들을 짧은 시간 안에 키워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윤석환 투수코치와 김경문 감독 역시 선동렬 감독 만큼이나 큰 일을 해냈다. 3, 4년 전 권오준이 그랬듯 두산의 젋은 불펜들도 앞으로 더 큰 일을 해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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