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룡(64)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해태 시절 외압으로 우승을 놓칠 뻔한 적이 있다”고 술회해 눈길을 끌었다. 김 사장은 지난 20일 한국시리즈 4차전을 앞두고 가까운 지인들과 가진 점심 자리에서 ‘승부는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틈새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이같은 옛 일을 예로 들어 말했다. 김 사장이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고 있던 1988년, 해태는 빙그레 이글스(한화 전신)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광주 1, 2차전에 이어 대전 3차전을 내리 이겨 3연승을 거두었다. 한 판만 더 따내면 해태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3연패와 통산 4차례 우승을 이룩할 수 있는 문턱에 서 있었다. 그 해 10월23일 대전 4차전을 앞두고 당시 해태 그룹 강남형 부회장과 해태 구단 노주관 사장, 심지어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용일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넌지시 또는 노골적으로 ‘기왕이면 관중이 많은 서울에 가서 우승 헹가래를 받는 게 좋지 않겠나’라며 김 감독에게 양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주위의 ‘외압’에 고민을 거듭하던 김 감독이 마지못해 수락 의사를 밝혔다. “겉으로는 좋다고 해놓고 경기를 이겨버리면 그만이지”라고 김 감독은 속셈을 하며 4차전에 나섰으나 웬걸, 3-14로 대패한 데 이어 잠실구장으로 옮겨 치른 5차전까지 2-6으로 내줘 연패 당하고 말았다. 당시 분위기는 ‘선동렬’이라는 국보급 투수를 보유하고 있던 해태의 우승은 ‘떼어 논 당상’처럼 여겨졌으나 승부의 흐름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공교롭게도 1차전에서 삼진 14개(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를 잡아내며 역투한 선동렬이 손가락 부상으로 도저히 출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태 구단 고위 관계자들은 물론 KBO 관계자들도 사색이 됐다. 다행히 해태에는 문희수라는 새 얼굴이 있었다. 문희수는 1차전에서 오른손 중지에 물집이 잡혀 강판한 선동렬의 뒤를 받쳐 세이브를 따냈고 3차전 완봉승에 이어 6차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올리며 팀 우승을 매조지했다. 한국시리즈 MVP도 당연히 그의 몫이 됐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문희수라는 돌출 투수가 없었더라면’해태 우승은 물건너가고 KBO는 엄청난 파문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 시리즈를 마친 후 이용일 사무총장은 김응룡 감독에게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는 후일담이 남았다. 그 때 이후 김응룡 사장은 머릿속에서 ‘양보’라는 두 단어를 완전히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선동렬(42) 삼성 감독이 ‘상대팀의 반전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마운드 운용으로 감독 데뷔 해에 우승을 일궈낸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스승 김응룡에게서 학습한 효과인지도 모른다. 홍윤표 기자 chuam@osen.co.kr 1988년 한국시리즈 3연패의 위업을 이룩한 해태 타이거즈의 축승회에서 이웅희 KBO 총재, 박건배 구단주, 김응룡 감독, 김인식 수석코치 등이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있다./KBO 편찬 한국프로야구 20년사 [Copyright ⓒ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