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수술 후 방출. 데뷔 첫 해 마무리 투수로 승격. 포스트시즌 무적 행진.
지난주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오승환(23)이 맹활약한 것처럼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도 신인 마무리 투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바비 젠크스(24)다. 팔꿈치 수술 뒤 재기에 성공, 신인으로 주전 마무리에 오른 과정이 오승환과 흡사하다.
젠크스는 23일(한국시간) 홈구장 US 셀룰러필드에서 펼쳐진 휴스턴과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4-3 한 점 차로 앞서던 8회초 2사 1,3루에서 구원 등판, 1⅓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승리를 지켜냈다. 지명타자로 출장한 휴스턴 간판타자 제프 배그웰을 98마일(158km)의 강속구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 불을 끈 젠크스는 9회에도 제이슨 레인과 애덤 에버렛을 삼진으로 잡는 등 4타자 중 3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유일하게 공을 맞힌 브래드 아스머스도 유격수 땅볼로 잡아 젠크스는 외야로 타구를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
지난 7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루키 젠크스는 보스턴과 디비전시리즈 2,3차전에서 연속 세이브를 따내는 등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4⅓이닝 무실점으로 3세이브를 거두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LA 에인절스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선발 투수들이 4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는 바람에 이날 무려 15일만에 실전 마운드에 올랐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특히 단타 하나면 동점이 될 위기에서 배그웰을 상대로 거푸 강속구로 승부를 거는 모습은 신인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였다.
올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젠크스지만 지나온 길은 순탄치가 못했다. 지난 2000년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에인절스에 지명된 젠크스는 지난해까지 5년을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지만 한 번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입단 초기인 2001년 더블A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놀란 라이언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속 100마일(161km)의 광속구를 뿌려 화제를 모았던 젠크스는 2003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팀 내 투수 유망주 5위에 오르는 등 에인절스 마운드의 차세대 기둥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컨트롤 불안과 지나치게 힘 위주로 던지는 데 따른 팔꿈치 통증, 120kg이 넘는 비만에다 야구장 안팎에서 이런저런 사고까지 치며 메이저리그의 부름은 끝내 오지 않았다.
팔꿈치 수술이 젠크스의 야구 인생을 바꿨다. 2003년 겨울 체중을 줄이려고 푸에르토리코 윈터리그에서 뛴 젠크스는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마이크 소시아 감독으로부터 "겨우내 가장 발전한 투수"라는 칭찬을 들었다. 이어 메이저리그 승격의 꿈을 안고 트리플A 솔트레이크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팔꿈치 통증이 악화돼 트리플A-싱글A 4차례 등판에서 승리 없이 2패, 방어율 10.71로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해 7월 수술대에 오른 젠크스는 12월 결국 팀에서 방출됐다. 쿠바에서 망명한 대형 내야수 켄드리 모랄레스를 영입한 에인절스가 40인 로스터에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젠크스를 웨이버 공시한 것. 성적 역순에 따라 앞선 7개 팀이 부상 경력이 있는 그를 외면했지만 젠크스의 강한 어깨를 주목한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그를 낚아챘다.
에인절스에서 선발로만 뛴 젠크스에게 켄 윌리엄스 화이트삭스 단장은 지난 봄 스프링캠프에서 "마이너리그에서 마무리 수업을 받으면 여름에 메이저리그로 불러주겠다"고 다짐했다. 더블A 버밍햄에서 시즌을 시작한 젠크스는 1승 2패 18세이브, 방어율 3.83에 40이닝 동안 삼진 47개를 잡는 활약을 펼쳤고 윌리엄스 단장은 7월초 약속대로 그를 빅리그로 불렀다.
7,8월 불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젠크스를 아지 기옌 감독은 정규 시즌 막판인 9월 중순 허리 통증으로 위태롭게 버티던 더스틴 허맨슨 대신 새로운 마무리 투수로 임명했다. 막판 대추격을 펼친 클리블랜드전에서 이틀 연속 승리를 날리는 등 기옌 감독의 '젠크스 마무리' 카드는 실패로 끝나는 듯했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빅리그 경력 불과 3개월(32경기 등판, 1승 1패 6세이브)의 젠크스는 보스턴과 디비전시리즈 2,3차전에서 연속 세이브를 따내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이 된 데 이어 이어 생애 첫 월드시리즈 등판인 1차전에서도 1점차의 살떨리는 상황에서 퍼펙트 세이브를 따냈다. 에인절스 시절 '사고뭉치'로 험하게 산 인생 역정이 월드시리즈라는 엄청난 긴장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을 만들었을 것이란 감탄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세이브로 젠크스는 1995년 페드로 보본 주니어(애틀랜타) 이후 11년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세이브를 따낸 신인 투수가 됐다. 또 메이저리그 데뷔후 불과 108일만에 월드시리즈 세이브를 따내 세이브가 처음 도입된 1969년 이후 1985년 토드 워렐(세인트루이스.52일)에 이어 두번째로 빠른 데뷔후 월드시리즈 세이브 기록을 남겼다.
기옌 감독은 192cm, 120kg의 거구인 마무리 젠크스를 투입할 때마다 '우리 팀에서 가장 큰 투수 나와라'는 뜻으로 손바닥으로 배를 만지거나 양 손을 허리 주위로 크게 벌리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기옌 감독은 젠크스를 부르는 우스꽝스런 제스처를 펼쳐보였다. 기옌 감독의 쇼가 펼쳐질 때마다 화이트삭스도 88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 발짝씩 더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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