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투수들 'PS 잔혹사'는 어디까지?
OSEN U05000176 기자
발행 2005.10.25 11: 36

지난 2000년 세인트루이스-애틀랜타의 디비전시리즈. 토니 라루사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페넌트레이스에서 20승을 거둔 에이스 대릴 카일 대신 루키 릭 앤킬을 1차전에 선발 등판시켰다. 앤킬이 부담을 느낄 것을 우려한 라루사 감독은 시리즈에 앞선 기자회견에 앤킬 대신 카일을 내보내는 '꼼수'까지 부리며 깜짝 카드를 썼다.
결과는 라루사의 감독 인생에서 최악의 패착으로 드러났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서 그렉 매덕스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게 된 앤킬은 1,2회를 무실점으로 넘겼지만 3회 무너져내렸다.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이 1회 매덕스에게 뭇매를 놓으며 6점을 뽑아 6-0의 리드를 안겼지만 앤킬은 3회를 넘기지 못했다. 선두타자 투수 매덕스를 볼넷으로 내보낸 앤킬은 볼넷 4개에 폭투를 무려 5개나 범한 끝에 이닝을 마치지 못하고 강판했다. 5개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사상 최다 폭투 신기록이다.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잦은 폭투를 범하긴 했지만 위력적인 구위로 제2의 샌디 쿠팩스라는 찬사를 들었던 앤킬은 이 경기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디비전시리즈에서 3전 전승으로 애틀랜타를 꺾은 세인트루이스는 뉴욕 메츠와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 다시 앤킬을 선발 등판시켰지만 이번엔 1회를 넘기지 못했다. 경기 시작 첫 공이 메츠 톱타자 티모 페레스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등 앤킬이 던진 20개 중 5개가 포수 미트를 맞지도 않고 뒤로 흘렀다.
겨우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마운드를 내려온 앤킬은 2003년까지 계속 재기를 시도했지만 갑작스레 찾아든 컨트롤 불안과 폭투 공포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비극은 그의 나이 21살에 처음 오른 플레이오프 마운드에서 비롯됐다.
김병현의 월드시리즈 '참사'가 일어난 건 이듬해인 2001년이다. 커트 실링-랜디 존슨 원투펀치의 호투로 홈구장 뱅크원볼파크에서 펼쳐진 월드시리즈 1,2차전을 내리 따낸 애리조나는 기세당당하게 양키스타디움에 입성했다. 로저 클레멘스를 앞세운 양키스에 3차전을 내준 애리조나는 실링이 다시 선발 등판한 4차전 8회초에 3-1 두 점차 리드를 잡아 창단 첫 우승에 1승 앞으로 다가서는 듯했다.
8회말 마운드를 이어받은 김병현은 3연속 탈삼진으로 8회를 가볍게 처리한 뒤 9회에도 투아웃을 잡았지만 주자 1루에서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투런홈런을 허용했다. 결국 연장 10회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홈런까지 맞은 김병현은 이튿날 5차전에서도 2-0으로 앞서던 9회 스콧 브로셔스에게 동점 투런홈런을 맞고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고 말았다. 김병현이 불과 22살때 일어난 일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맞붙은 올 월드시리즈는 이제 1,2차전이 치러졌을 뿐인데 벌써 두 팀 마무리 투수들이 각각 블론 세이브와 끝내기 홈런 패전을 기록했다. 는 2차전에서 9회초 대타 호세 비스카이노에게 2타점 동점타를 맞은 바비 젱크스와 9회말 스캇 퍼세드닉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브래드 리지를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범'이라고 표현했다.
젱크스는 전날 1차전에서 한 점차 세이브를 따낸 뒤 하룻만에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셈이 됐다. 리지는 세인트루이스와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앨버트 푸홀스에게 역전 스리런 홈런을 맞은 데 이어 포스트시즌 2경기 연속 결승 홈런을 내주고 말았다.
올 시즌을 더블A에서 시작한 젱크스는 올해 24살로 투타를 통틀어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든 화이트삭스 선수중 가장 어리다. 리지도 나이는 28살이지만 지난 1998년 대졸 선수로 드래프트에 지명돼 올해가 풀타임 3년차에 불과하다. 월드시리즈는 이들 젊은 투수들이 단박에 이름을 널리 떨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지만 한 발만 삐끗해도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벼랑 끝이기도 하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투수들이기에 '실족'할 위험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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