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 출범 주도세력들, '열매는 달았다'
OSEN U05000014 기자
발행 2005.11.03 13: 25

투쟁은 힘들었지만 열매는 달았다.
지난 1999년 겨울 송진우(39.한화) 전준호(36.현대) 양준혁(36.삼성) 마해영(35.LG) 강병규(33.방송인) 등은 '선수권익 향상'을 내세우며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 결성을 선언했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비롯한 8개구단 경영진들은 일제히 '선수노조는 시기상조'라며 결사 반대했다.
이로 인해 선수협 파동은 매년 겨울이면 반복됐고 결국에는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선수협이 탄생했다. 그 와중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프리에이전트(FA) 제도'를 도입해 선수들을 다독거렸다.
당시 송진우 회장 등 선수협 수뇌부들은 FA도 좋지만 완전한 선수협을 인정해 달라며 투쟁했다. 이들은 '우리들은 선수생활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후배들을 위해 선수협을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 선수협이 결성된 후에는 마해영이 고향팀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는 등 '보복'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큰 탈 없이 지금까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오히려 당시 선수협에 미온적이었던 선배나 동기생들에 비해 훨씬 잘나가고 있다. 이미 FA를 한 번씩 거치면서 두둑한 돈보따리를 챙겼고 송진우 전준호 양준혁 등은 올해 2번째 FA를 선언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에도 최소한 10억 원이 넘는 몸값들을 받을 전망이다. 마해영이 지난 2일 기아에서 LG로 트레이드되는 등 2년마다 팀을 옮기는 '떠돌이 신세'가 됐지만 마해영도 2년 전 기아와 4년간 28억 원에 FA 계약을 맺어 금전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선수협 주도세력 중 이들 말고도 선수협 덕분에 스타가 된 이가 바로 두산 베어스 우완투수였던 강병규다. 강병규는 선수협 사태 당시 '대변인'을 맡아 전 언론을 상대하며 조리있는 말솜씨와 잘 생긴 외모를 과시, 방송계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00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강병규는 곧바로 방송계로 나가 지금은 최고 MC 중 한 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선수협을 주도할 때 겪었던 투쟁이 이들을 더욱 채찍질해 오랜 동안 그라운드 내지는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
박선양 기자 s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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