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올림픽을 앞둔 지난 2000년 주성로 당시 대표팀 코치와 서정환 현 기아 감독 등 아마-프로야구 관계자들이 해외파들의 대표팀 선발 여부를 놓고 미국에까지 날아간 적이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 김선우와 조진호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곤 "국내 시절보다 구위가 훨씬 뛰어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로 돌아온 뒤 김선우 등은 끝내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다.
왜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면제의 꿀맛을 본 프로 구단들이 프로가 주축이 된 드림팀에 해외파들이 포함되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속팀 선수 한 명이라도 더 대표팀에 넣으려고 사활을 거는 마당에 해외파에게 줄 자리는 없었는 지 모른다.
이른바 '드림팀'이 처음 구성된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박찬호와 서재응 김병현 등 메이저리그 진출 또는 진출 예정 선수가 주축이 돼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그 뒤로 해외파는 대표팀에서 철저하게 배제돼왔다. 순수 국내파를 고집해 성공한 경우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이라면 2003년말 아테네올림픽 예선에선 대만에도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쓴맛을 봤다.
내년 3월 야구월드컵(WBC)에 출전할 대표팀 구성을 놓고 말들이 많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선수든 미국이나 일본으로 진출한 해외파든 실력 위주로 선발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 프로야구 구단이 보이고 있는 해외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다.
WBC 대표팀 사령탑에 임명된 김인식 감독이 "해외파들의 전원 소집을 요청하겠다"고 나선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눈쌀 찌푸리게하는 얘기들이 들린다.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WBC는 괜찮지만 내년 아시안게임 때는 대표팀에 해외파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역시 이유를 짐작키 어렵지 않다. WBC는 병역 면제 여부가 아직 미정이지만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이면 병역이 면제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박찬호 서재응이야 이미 병역 면제를 받았으니까 그렇다손 치고 최희섭만 해도 내심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바라고 일찌감치 WBC 출전을 자청하고 나섰다. 선수 생명이 걸린 일인데 누가 최희섭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실력대로라면 진작 드림팀에 뽑혔어야 할 김선우도 말은 안하고 있지만 WBC와 함께 마지막 병역 면제 기회인 아시안게임 참가를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현역 프로야구 감독인 대표팀 사령탑이 '해외파 총동원령'을 언급하는 마당이지만 프로야구 규약엔 '1999년 1월 1일 이후 해외 진출 선수는 프로 구단과 2년간 계약할 수 없다'(107조 2항)는 제재 조항이 엄연히 살아있는게 현실이다.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 대표적인 선수가 1999년 3월 시카고 컵스와 계약한 최희섭이다. 국내 야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지만 규약으로 국내 진출을 막은 선수를 목놓아 대표팀으로 부르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
병역 면제용 대회엔 국내 프로구단 소속 선수를 필사적으로 밀어넣으면서 병역 면제가 불투명한 WBC에만 해외파들을 상대로 애국심 운운하는 건 지금까지 국내 야구계가 보여온 행태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다. KBO와 8개 구단은 WBC와 도하 아시안게임 등 내년 시즌 양대 국제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선출에 대한 기준부터 분명히 세울 필요가 있다. 해외 진출 선수에 대한 제재 규정도 현실적으로 다시 손볼 때가 됐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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