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이 랜디 존슨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오승환이 삼진으로 잡는 모습을 상상해 봤나. WBC는 국내 야구 흥행에 오히려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야구월드컵(WBC)에 올인하다 국내 프로리그를 그르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내용의 기사에 한 네티즌이 단 댓글이다. 양준혁이 랜디 존슨을 상대로 홈런을 칠 수 있을 지는 심히 의심스럽지만 만약 그런다면 정말 대단한 사건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승엽이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던 것만큼 반향이 크지 않을까.
맞는 지적이다. WBC는 국내 야구에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양준혁의 홈런 같은 대사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만에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선 1라운드에서 대만에마저 패한다면 그 역풍이 국내 리그로 불어닥칠 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의 홈런이 정말 기대되고 대만은 꼭 이겨야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프로야구계 전체가 WBC에 목매는 듯한 요즘 분위기는 수긍하기 힘들다. 근본부터 다시 따져보자. WBC가 어떤 대회인가.
메이저리그가 북중미 대륙과 일본 한국 등으로 국한된 시장을 중국과 남미 등 전세계로 넓히기 위해 몇년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만든 대회가 WBC다. 공동 주최자인 메이저리그사무국(MLB)과 선수노조(MLBPA)가 대회 진행부터 수익금 분배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한다. 야구월드컵을 표방한다지만 200여개 가맹국이 뭉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축구월드컵과는 출발부터 다를 수 밖에 없는 대회가 WBC다.
형식적인 주체가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건 WBC를 개최하는 메이저리그의 의도다. 야구의 세계화라는 표면적인 슬로건 뒤에는 시장 확대라는 진짜 목표가 있다.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좀더 많은 나라에 좀더 높은 액수에 팔고, 좀더 많은 전세계 유망주 선수들을 메이저리그로 끌어들이고, '야구는 전세계적인 스포츠'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궁극적으론 역시 수년전부터 주장해온 이른바 '월드 드래프트'를 성사시켜 보다 싼값에 선수들을 사들이려는 복잡한 목적이 깔린 대회가 WBC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밀어닥친 메이저리그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관중 감소에 휘청여온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들이 메이저리그의 이런 의도를 제대로 알고 벌써부터 WBC에 들떠있는지 궁금하다. 유망주 선수들을 줄줄이 메이저리그에 뺏긴 한국 프로야구는 규약에 해외 진출 선수는 2년간 국내 복귀를 금하는 제제 조항까지 두고 있다. 그 제제 조항에 걸려있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WBC 총동원령'을 내리고, 내년 시즌에 대비한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가 한창일 2월에 장기간 대표팀 합숙 훈련을 계획하고 있다니 한국 프로야구의 중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심하게 표현하면 WBC는 상술에 밝은 메이저리그가 만든 '야구 엑스포'에 불과하다. WBC가 사고 파는 사람이 여럿이 뒤섞이는 보통의 엑스포와 다른 건 파는 사람이 메이저리그뿐이고 나머지 전세계가 구매자라는 점이다. 일방적으로 구매를 강요당하는 엑스포, 언젠가 다시 한국 프로야구의 기반을 흔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 모를 '상품 설명회'에 참가하는게 그리도 들뜰 일인가.
변방의 한국 야구가 메이저리그가 주도하는 큰 물결을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일 지 모르겠다. WBC 참가도 이미 결정된 일이다. 하지만 국내 리그에 차질을 주면서까지 WBC를 위해 2주간 전지훈련을 하겠다는 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WBC를 앞두고 KBO 및 구단 관계자들의 냉정하고 현실적인 대처가 아쉽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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