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시내 한복판 엘리게이니 강가에 위치한 PNC파크는 축복을 가져다줬어야 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구장중 가장 전경이 아름답다는 PNC파크는 그러나 아직까지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암울한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PNC파크의 개장을 몇달 앞둔 지난 2000년 11월. 피츠버그는 제이슨 켄달과 6년간 6000만 달러라는 초장기 계약을 맺었다. 켄달을 명실상부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앞세워 새 구장에 관중들을 채우려는 시도였다. 덕 드라벡과 배리 본즈가 투타를 이끌던 1990~1992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를 3년 연속 제패한 뒤 이렇다할 간판 스타가 없이 헤매온 팀의 현실을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케빈 맥클래치 구단주의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었다.
켄달과 계약은 그러나 재앙으로 드러났다. 장기계약을 맺은 직후 켄달의 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고 약점인 장타력 부족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01년 팀 승률이 3할대로 추락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켄달에게 쏟아졌고 부담을 안은 켄달은 더욱 부진에 빠졌다.
후안 곤살레스와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의 사례에서 입증됐듯 새 구장과 성적 부진은 최악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성적 부진으로 PNC파크에 관중이 들어차지 않아 피츠버그는 연간 1000만 달러 이상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3년 여름 간판 선수들을 모조리 내보내는 '바겐 세일'에 돌입했다.
제프 수판을 보스턴으로, 브라이언 자일스를 샌디에이고로 보낸 데 이어 불펜의 핵인 마이크 윌리엄스와 스캇 사우버벡, 아라미스 라미레스도 줄줄이 팀을 떠났다. 졸지에 팀 와해의 원흉이 된 켄달도 이듬해 겨울 결국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자일스를 샌디에이고에 내주면서 받은 3명의 선수중 한 명이 제이슨 베이(27)다. 캐나다 출신으로 2000년 드래프트에서 몬트리올에 22라운드에 지명된 베이는 뉴욕 메츠와 샌디에이고에서도 메이저리그 승격의 기회를 잡지 못한 끝에 4번째 팀 피츠버그로 보따리를 쌌다.
피츠버그에서 성공 스토리는 잘 알려진 부분이다. 자일스가 떠난 좌익수 자리를 물려받은 지난해 베이는 120경기에서 2할8푼2리의 타율에 26홈런 82타점, 장타율 5할5푼의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팀 역사상 최초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이어 올시즌엔 162 전경기에 출장하며 타율을 3할대(.306)로 끌어올렸고 32홈런 101타점으로 데뷔 2년만에 3할-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베이의 폭발적인 성장에 피츠버그는 지난 18일(한국시간) 4년간 1825만 달러 장기계약이라는 선물을 선사했다. 될성부른 젊은 선수를 일찌감치 장기계약으로 묶는 건 메이저리그에서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최근 수년간 뼈아픈 '장기계약 실패 사례'를 양산해온 피츠버그로선 결단이었다. 피츠버그가 베이와 계약을 발표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켄달과 6년 계약을 발표한 지 꼭 5년째 되는 날이었다.
피츠버그는 켄달에 앞서 1999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은 크리스 벤슨(뉴욕 메츠)과 4년간 1380만 달러에 계약했다가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린 경험이 있다. 데뷔 후 2년 연속 두 자리 승리를 따냈던 벤슨은 팔꿈치 수술을 받고 2001년을 통째로 쉰 뒤 2002~2003 두 해 합쳐 14승에 그친 끝에 지난해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됐다. 조기 장기계약이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의 전유물일 리 없다. 피츠버그도 이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피츠버그 구단 안팎에선 이번 장기계약을 놓고 '제이슨 베이는 다를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이의 인간적인 성격과 성품이 팀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최근 2년간 낸 성적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다.
베이는 올시즌 출루율 4할2리로 내셔널리그 외야수중 4위, 장타율 5할5푼9리로 역시 NL 외야수중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출루율 장타율을 합친 OPS(.961)는 양 리그 외야수를 통틀어 2위다. 그를 능가한 외야수는 매니 라미레스(OPS .982) 한 명 뿐이었다. 전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데릭 리와 앨버트 푸홀스, 카를로스 델가도, 토드 헬튼 등 4명의 1루수를 빼곤 내셔널리그에서 베이보다 OPS가 높은 타자는 없었다. 베이가 그러고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츠버그는 올시즌까지 13년 내리 승률 5할 달성에 실패했다. 피츠버그와 평행선을 달리던 밀워키가 올해 81승 81패 턱걸이로 13년만에 5할 승률을 달성, 메이저리그 전 구단을 통틀어 피츠버그가 가장 긴 수치스런 기록을 떠안게 됐다. 디트로이트는 올해까지 12년 연속 승률 5할에 못 미쳤다.
로이드 맥클렌든 감독을 경질하고 짐 트레이시를 새 사령탑으로 영입한 피츠버그는 내년 시즌 PNC파크에서 올스타게임을 주최하는 등 전기를 맞게된다. 그러나 올스타게임보다 더한 이벤트를 유치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피츠버그를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는 건 좋은 성적 뿐이다. 자크 듀크 등 젊고 싱싱한 어깨와 함께 제이슨 베이가 그 몫을 맡아주리라는 기대가 이번 장기계약에 담겨있다.
배리 본즈가 떠난 뒤 13년동안 수렁에서 헤매온 피츠버그를 제이슨 베이가 구해낼 수 있을까.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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