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자신의 고객인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거액 장기계약을 안기기 위해 두툼한 기록 분석집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당 선수의 기록 가운데 그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항목들을 골라 만든 분석집은 그 방대한 양과 세밀한 내용이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박찬호가 FA 자격을 얻은 지난 2001년에도 A4용지 수십 장 분량의 '책'을 만들어 각 팀에 돌렸던 보라스가 이번엔 자니 데이먼을 위한 분석집을 내놓았다. '사상 최고의 톱타자' '리키 헨더슨보다 뛰어난 선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부상이 적은 선수' 등 작은 제목 아래 데이먼이 7년의 초장기 계약을 요구할 만한 기록적인 근거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분석집을 받아든 구단들은 그러나 냉소적이다. 보라스의 기록 분석 능력과 노력은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유리한 기록은 화려하게 포장하면서 불리한 기록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그의 수법에 신물이 난다는 반응들이다. 중견수인 데이먼이 어깨가 굉장히 약한 데다 지난 시즌 홈런이 크게 줄어든 것에 대한 해명은 '데이먼 X파일'에 한 줄도 들어있지 않다.
한국에선 프로야구선수협회가 시즌이 끝난 뒤 잇달아 내놓고 있는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선수협은 얼마 전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 선수 연봉이 8개 구단 전체 지출의 18%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데 이어 최근엔 일본 프로야구 연봉 총액이 한국의 9배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봉 비중 18%'는 FA 계약금과 외국인 선수 몸값, 포스트시즌 배당금과 전지훈련 비용 등을 모두 빼고 계산한 것이라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즉각적인 반박을 받았다. 연봉을 포함 선수들에게 투자되는 비용이 구단 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제대로 따져볼 일이다.
또한 한일 양국 연봉 대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최근 들어 침체에 빠졌다지만 일본 프로야구는 상당수 구단이 흑자 기조 위에 있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이래 십 원 한 푼 남겨 본 적이 없는 만성 적자 구조로 누적 적자가 팀마다 수백 억 원에 달한다. '일본 연봉이 한국의 9배'라고 밝힌 선수협의 보도자료엔 이런 언급이 한 줄도 없다. 두 나라 국민소득과 물가 차이에 따른 금액 환산도 없다.
'기업 홍보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는 선수협의 기본 논리도 일본과 비교에선 색이 바랜다. 차라리 메이저리그와 비교한다면 몰라도 한국처럼 기업이 자사 이름을 걸고 직접 운영하는 일본 프로야구에도 기업 홍보효과는 있다. 선수협의 보도자료는 유리한 것만 골라만든 보라스의 X파일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선수협이 간과한 건 최근 2,3년 새 잇단 거액 FA 계약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평균 연봉이 일본과 미국보다도 빠른 추세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라스처럼 제 논에 물대기식 자료를 내는 것 말고도 선수협이 해야할 일은 많아 보인다. 갈수록 극소수 특급 선수들에게만 유리해지는 FA 제도 개선과 야구월드컵(WBC)을 앞두고 내년 시즌 일정 조정과 대표팀 선발 기준 마련, 금지 약물 검사의 조속한 도입 등 선수협이 외면해서는 안되는 과제가 산더미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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