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 주인공, 칼 엘드레드 은퇴
OSEN U05000014 기자
발행 2005.11.29 09: 16

세인트루이스 우완 불펜 요원 칼 엘드레드(38)가 29일(한국시간) 은퇴를 선언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조시 베켓과 카를로스 델가도의 트레이드, B.J. 라이언과 빌리 와그너의 거액 계약에 쏠려있는 동안 엘드레드는 조용한 퇴장을 선택했다.
갈수록 나약한 백만장자들이 늘고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엘드레드는 인간 의지의 강인함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선수였다. 대학 시절 특급 유망주로 각광받던 엘드레드는 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17순위)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됐다. 1991년 트리플A 전체 투수 중 탈삼진, 투구이닝, 선발 등판 횟수 1위를 기록한 엘드레드는 그 해 9월 뉴욕 양키스전에 선발 등판, 승리를 따내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92년 11승 2패, 방어율 1.79로 루키 시즌을 화려하게 마감한 엘드레드는 밀워키 마운드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1993년 무려 258이닝을 던져 아메리칸리그 투수 중 1위, 1994년 AL 4위(179이닝) 등 2년동안 430이닝을 넘게 던지며 27승을 따냈다. 2년 연속 선발 등판 횟수는 AL 1위였다. 아이오와 농촌 출신의 엘드레드는 팀이 원할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 주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뒤론 모든 게 달랐다. 1995시즌 중반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마감한 뒤 토미 존 수술, 1996년 60일 DL로 시즌 시작, 1997년 13승 15패로 재기하는 듯했지만 이듬해 팔꿈치 골절로 또다시 DL행.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2000년에 7월까지 10승 2패를 달렸지만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주저앉았고 결국 팔꿈치에 스크루를 박아넣는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엘드레드는 그 후로 두 번이나 더 수술을 받았지만 팔꿈치 통증이 가시지 않아 2001년 4월 두 경기 등판을 끝으로 2002년까지 공을 잡지 못했다. 무려 8년에 걸친 부상과 2년에 가까운 실전 공백 끝에 은퇴를 결심한 엘드레드는 아이오와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집안 일을 거들던 어느 날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괴롭혀온 팔꿈치 통증이 사라진 걸 깨달은 것. 친구를 불러 근처 대학 캠퍼스에서 캐치볼을 해봐도 팔꿈치는 끄떡 없었다. 그 때 화이트삭스의 방출 통보가 날아들었다.
한 달 여동안 개인 훈련으로 어깨를 만든 엘드레드는 2002년 말 애리조나에서 20개팀 스카우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트라이아웃을 가졌다. 엘드레드가 아무 통증 없이 던지는 걸 눈여겨본 세인트루이스가 입단을 제의했고 연봉 540만 달러를 받던 엘드레드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받아들였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 개막 엔트리를 따낸 엘드레드는 2003년 7승 8세이브 11홀드, 지난해 4승 1세이브 9홀드, 올 시즌엔 1승 2홀드 방어율 2.19를 기록하며 세인트루이스 불펜의 핵으로 활약해왔다.
불펜 투수로 재기에 성공한 뒤 2년 연속 50경기 넘게 등판한 엘드레드는 올 시즌 31경기 출장에 그쳤다. 팔꿈치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인 심근심막염 때문에 첫 두 달을 결장한 탓이다. 내년이면 39살이 되는 그에게 세인트루이스가 보장된 연봉을 제시하길 꺼려하자 엘드레드는 토니 라루사 감독과 상의 끝에 은퇴를 결심했다.
341경기 등판(선발 192경기)에 86승 74패 9세이브, 방어율 4.42가 부상과 팔꿈치 수술, 재기 노력으로 점철된 엘드레드의 메이저리그 통산 14년 성적이다. 엘드레드는 와 인터뷰에서 "세인트루이스가 보장된 연봉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나쁜 감정은 전혀 없다"며 "앞으로 1,2년 더 던질 수도 있겠지만 은퇴가 최선의 결정이라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종민 기자 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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