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외로운 자리라고들 한다. 승패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감독의 결정에서 가장 큰 부분은 선수 기용과 교체다. 선수 교체가 자유로운 다른 종목들과 달리 야구와 축구는 한 번 선수를 빼면 그 경기에 다시는 넣을 수 없다. 야구와 축구 감독이 더더욱 외로운 이유다.
그래디 리틀(55)은 지난 2003년 10월 17일(한국시간)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양키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7차전. 보스턴은 8회초까지 5-2로 앞서 1986년 이후 17년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아웃카운트 6개를 남겨두고 있었다.
6회까지 단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던 보스턴 선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7회 세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르티네스는 8회에도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고는 데릭 지터와 버니 윌리엄스에게 연타를 허용, 두 점차로 쫓기게 됐다. 투구수가 120개에 육박한 가운데 챔피언십시리즈 들어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2루타를 두 개나 친 왼손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리틀 보스턴 감독이 마운드에 오르자 투수 교체는 당연한 듯했다. 그러나 마르티네스가 "괜찮다"고 고개를 젔자 리틀 감독은 그대로 덕아웃으로 돌아와 버렸다. 마쓰이의 2루타에 이어 호르헤 포사다의 2타점 2루타. 순식간에 5-5 동점이 됐고 리틀 감독은 그제서야 마르티네스를 내렸지만 때늦은 뒤였다. 연장 11회말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으로 양키스가 월드시리즈행 티켓을 가져가 버렸다.
경기 후 마르티네스는 "더 던지겠다고 한 건 나고 경기를 그르친 것도 나"라며 책임을 떠안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밤비노의 저주'의 역사에 또 한 페이지를 보탠 리틀은 플로리다 말린스의 우승으로 월드시리즈가 끝이 난 직후 해임됐다.
다시는 지휘봉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리틀은 최근 LA 다저스 새 감독에 임명됐다. 한 달 가까운 장고 끝에 리틀을 감독으로 선택한 네드 콜레티 단장은 2년 전 리틀의 '실패'가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리틀과 감독 면접 중 15분 가량 그 경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는 콜레티 단장은 "(마르티네스를 교체하지 않은) 그 날의 결정과 그 결과에 대해 숨김없이 얘기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보스턴은 리틀에게 일생일대 처음 찾아온 기회였다. 무려 16년이나 마이너리그 감독을 지내며 1054승 903패를 기록한 리틀은 그 중 10년을 애틀랜타 팜 시스템에서 보냈다. 1990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바비 콕스 감독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던 리틀은 2002년 보스턴에서 고대하던 메이저리그 사령탑에 데뷔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스턴 선수들을 이끌고 2년 연속 90승 이상을 거두며 이태째는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 준비된 리더십을 인정받았지만 결말은 끔찍하고 비참했다.
리틀은 다저스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 "그날의 결정으로 (보스턴 팬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줘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바로 다음 날로 그 일을 잊었다.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지친 마르티네스를 그대로 놔두건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였지만 분명한 건 또 하나 있다. 만약 그날 마르티네스를 강판시켰다가 불펜이 승리를 날렸다면 역시 비난의 화살은 다른 사람이 아닌 리틀 감독에게 쏟아졌을 거라는 사실이다.
애틀랜타가 콕스의 후임으로 점찍어 뒀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던 리틀 감독은 보스턴에서 끔찍한 실패를 겪었지만 오뚜기처럼 일어나 다시 기회를 잡았다. 그 기회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피하고 숨으려 하기 보다는 당당하게 받아들인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재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실패를 딛고 일어선 리틀 감독이 곤경에 처한 구단 다저스를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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