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운드에 서기를 어머니가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이다".
'로켓' 로저 클레멘스(43)를 지탱해온 힘은 홀어머니 베스 클레멘스였다. 살아 생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양키스 시절 은퇴를 시도했던 클레멘스는 지난 9월엔 어머니를 임종하던 날 마운드에 올라 통산 340승째를 따냈다. 세상을 뜨기 몇 시간 전까지 휴스턴이 포스트시즌 티켓을 땄는지 궁금해했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클레멘스는 경기 후 "내 열정의 한 구석을 잃었다"며 눈가를 적셨다.
최근 플로리다에서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 폴 로두카(33)도 '어머니의 이름'으로 그라운드에 선다. 로두카는 LA 다저스 시절부터 타석에 설 때마다 배트로 땅에 L자 두 개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두카가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전인 1996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루시 로두카를 기리기 위해서다. 로두카의 스파이크와 글러브에도 L자 두 개가 새겨져 있다.
로두카의 어머니 루시는 씩씩한 '베이스볼 맘'이었다. 리틀리그에서부터 야구 선수에게 중요한 동체 시력을 키워주기 위해 저녁마다 강낭콩을 던져 빗자루 대로 맞히게 했다. 대학 시절엔 행여 아들이 빗나갈까 밤 11시 반까지 집에 오지 않으면 득달같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는 엄한 어머니였다.
루시는 로두카가 애리조나 주립대 재학 시절 아들 경기를 응원갔다가 키 175cm에 불과한 로두카를 '땅딸보' '찐빵'이라고 놀리는 관중에게 펀치를 날린 적도 있다. 로두카는 애리조나 주립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우며 스포팅뉴스 올해의 선수로까지 선정됐지만 작은 키 때문에 1993년 드래프트에서 25라운드에서야 LA 다저스에 지명됐다. 다저스가 계약금으로 고작 5000달러를 제의하자 아들 대신 협상에 나서 계약금 2만 8000달러에 하이 싱글A 베로비치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더 좋은 조건을 따내기도 했다.
루시 로두카는 아들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기 이태 전인 1996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떴다. "장례식 다음 날부터 다시 야구를 하라"는 게 그녀가 남긴 유언이었다. 1998년 메이저리거로 승격된 로두카는 2001년 짐 트레이시 감독이 부임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으로 뛴 2001년 25홈런 90타점을 기록했고 2003년엔 다저스 마운드를 팀 방어율 메이저리그 전체 1위(3.16)으로 이끌며 포수로도 빛이 났다.
2살 때 애리조나로 이사했지만 로두카가 태어난 곳은 뉴욕이다. 로두카의 아버지는 조 토리 양키스 감독과 어린 시절 동네 야구를 같이 한 친구이자 뉴욕 메츠에서 뛰었던 리 마질리 전 볼티모어 감독을 리틀야구에서 지도한 야구인 출신이다. 메츠를 응원하며 자란 로두카의 등번호 16번도 마질리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로두카는 1986년 메츠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기뻐서 침대 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아버지 폴 로두카 시니어는 와 인터뷰에서 "메츠로 트레이드된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아들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태어난 곳이자 마음의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온 로두카. L L을 새기며 셰이 스타디움 그라운드에 설 로두카가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서재응이 있는 메츠 투수진을 이끌고 지난 2000년 이후 6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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