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벗기'를 거부했던 테드 윌리엄스와 리어든의 인연
OSEN U05000014 기자
발행 2006.01.03 15: 09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스포츠 선수와 미디어의 관계 중 사상 최악은 단연 테드 윌리엄스와 보스턴 지역 언론의 오랜 갈등이다.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만 19년을 뛰며 트리플 크라운 두 차례 등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을 6차례나 제패, 베이브 루스를 떠나보낸 뒤 3류 구단으로 전락한 보스턴을 구해냈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타자로 추앙받은 윌리엄스는 그러나 보스턴 지역 언론들과는 철천지 원수지간처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댔다.
불화는 일찌감치 싹이 텄다. 데뷔 첫 해인 1939년 윌리엄스는 타율 3할2푼7리에 31홈런 145타점으로 루키로선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기록을 작성하며 일약 보스턴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해 겨울 부모가 이혼을 하고 형이 투옥되는 등 윌리엄스에게 불운이 잇따랐다. 보수적인 보스턴 언론은 윌리엄스를 백안시하기 시작했고 윌리엄스도 자신의 사생활을 캐려는 기자들을 혐오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최악의 충돌은 1947년 가을 빚어졌다. 윌리엄스는 타율 3할4푼3리에 32홈런 114타점으로 라이벌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315 20홈런 97타점)를 압도했지만 아메리칸리그 MVP는 단 1점 차로 디마지오에게 돌아갔다. 멜 웹이라는 한 보스턴 기자가 MVP 투표에서 1~10위 표 중 어디에도 윌리엄스의 이름을 적어넣지 않은 것이다.
웹이 10위 표만 줬어도 윌리엄스는 디마지오를 꺾을 수 있었다. 앞서 그 해 봄 스프링캠프에서 윌리엄스에게 "이 늙은 염소야. 나가 죽어라"고 욕설을 들은 데 앙심을 품은 웹이 되갚음을 한 것이다.
윌리엄스는 홈런을 치고 기립박수를 받아도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는 것으로 보스턴 지역 언론, 나아가 지역 팬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럴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갔지만 윌리엄스는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1960년 9월 펜웨이파크에서 펼쳐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은퇴경기에서 윌리엄스는 8회 마지막 타석에서 통산 521번째이자 생애 마지막 홈런을 터뜨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베이스를 돈 윌리엄스는 덕아웃으로 들어가서는 거듭된 기립박수에도 다시는 그라운드를 밟지 않았다.
대쪽 같았던 윌리엄스도 칠순의 노인이 되서는 성미가 누그러졌다. 윌리엄스는 1991년 5월 '테드 윌리엄스의 날'에 보스턴 구단의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여 은퇴 후 처음으로 펜웨이파크에 섰다. 경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현역 시절) 난 보스턴 팬들과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다"며 고집스러웠던 젊은 시절에 대해 후회를 드러낸 윌리엄스는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나. 모자를 들어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준비해온 모자가 없었던 윌리엄스는 불펜에 있던 한 투수에게 모자를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 투수는 "모자가 한 개뿐"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윌리엄스가 "곧 돌려주면 될 것 아니냐"고 쏘아붙이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자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있던 윌리엄스는 장내 아나운서가 자신을 소개하자 모자를 꺼내들어 허공에 흔들고는 머리에 썼다가 다시 벗어 들어올리며 펜웨이파크를 가득 메운 팬들에게 인사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가 50년이 넘도록 싸워온 보스턴 지역 언론과 팬들에게 보내는 화해와 사과의 메시지였다.
당시 윌리엄스에게 모자를 '뺏긴' 보스턴 투수는 바로 얼마 전 화제의 인물이 된 제프 리어든이다. 개인 통산 세이브 역대 6위(367세이브)로 1987년 미네소타의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이기도 한 리어든은 지난해 말 대낮에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한 보석상에 들어가 '총기가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쪽지를 종업원에게 건네고 현금 170달러를 뺏어 달아나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리어든은 2년 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아들을 잃은 뒤 우울증에 시달려온 끝에 안정제를 복용한 뒤 환각 상태에서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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